소금눈물 2011. 11. 10. 15:22

01/07/2004 04:46 pm공개조회수 0 1



경비실에 앉아 손바닥만한 텔레비전으로 연속극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박씨가 넋이 나간 듯 휘청거리는 김경일 씨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야 .어델 싸돌아대이다 이제 기 들어오나. 이 기사가 김 과장한티 욕을 억수로 얻어묵고 벨르다 갔다이"

평소 같으면 그런 인사를 들으면 현관문 유리라도 한 번 걷어찰 인사가 대꾸도 없이 지나치다 오히려 놀란 박씨가 고개를 빼고 내다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김경일 씨는 제 정신이 아닌 듯싶었다.
술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데 걸음이 흔들렸다.

심상찮은 생각이 든 박씨가 쭈볏쭈볏 다가가 어깨를 툭 치자 언뜻 돌아보는 김경일 씨의 두 눈에는 뜻밖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이노므 자슥이 와 이카나! 겡일아 니 와 이카나!"

아무 말 없이 잡힌 어깨를 확 뿌리치며 낮게 뱉는 목소리도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아재요 내는 살고 싶은 생각 하나또 없는 사람이라요, 놔 두소"

허청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는 뒷태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박씨는 옥탑 방까지 따라 올라갔다.
벽에 기대어 짐승처럼 어헝, 하며 목을 놓아 우는 김경일 씨 옆에서 박씨는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씨가 담배를 두 개비째 태우고 나서 제 풀에 꺾인 김경일 씨가 뜨문뜨문 말을 놓기 시작했다.

낮에 앰뷸런스를 타고 아미동엘 갔다가 하단을 지나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하단 지하철 역 부근에서 그는 제 눈을 의심했다.
헐겁게 날리는 포장 아래 밤을 구워 팔고 있는 여인, 바로 도망을 한 아내였다.
신호가 바뀌어 달리는 차를 세우고 차로로 뛰어들어 건너 그 앞까지는 내달렸는데 막상 그 앞에까지 가니 자신을 드러낼 수 없던 것이었다.

분명히 아내가 맞긴 맞았다.
포장마차래도 남 보기에 그럴 듯하게 차린 것도 많더만 그 여자의 것은 유독 초라하고 내미는 손이 무색하게 변변한 것도 없었다.
곱상하던 얼굴은 헤어진 지 얼마라고 그새 거칠어지고 터져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고 옷차림은 너무도 허술해서 속수무책으로 고스란히 바람맞이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미워서 미워한 여자가 아니었다. 지지리 못난 남편의 매를 피해 도망을 했으면 보란 듯이 살아야지 어쩌자고 그렇게 망가져서 구멍가게 하나 못 갖고 역전에서 밤이나 구워 팔고 있냐는 것이다.

자신에게 과분한 여자라는 걸 알아서, 나갔을 때도 찾지 않았었다.
자신이 아니면 어떤 남자를 만나도 행복하게 살 여자다 싶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와 그냥 왔노? 그래 살라꼬 띠쳐 나갔나 머리채를 잡아갖고라도 딜고 오지 와 그냥 말아삣노?"

"딜고 오문 우짤끼요. 내 같은 놈 어데 보고 살라고 딜고 오요. 내 한티이 맞고 살다 죽으나 맘이라또 펜하이 그래 사나........"

"와 맞고 사노. 또 팰라카나. 인자이 작정을 하고 패멘서 살라캤드나?"

김경일 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손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가 그런 맘이 아이다 하는 기를 알면서도 이 무슨 복이고, 누한티 갈 기 내 한티 잘못 왔겠지 싶어서. 우짜든 맘이 놓이질 않습디더. 맘을 못 믿어서, 못 믿어서......."

박씨는 한숨을 쉬었다.

아내의 초라한 포장마차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눈길이 떨어지지도 않아 저녁 내내 먼 발치에서 서성이다 맥이 빠져서 돌아온 것이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김경일 씨 옆에서 건네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연거푸 담뱃갑만 뒤적이던 박씨가 나오다 문득 뒤꼭지가 선뜻 해졌는데 그때까지 김경일 씨는 망연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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