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렵도> 김득신
태풍이 지나가는 여름 한낮은 몹시 덥고 습합니다.
초복 더위에 습기까지 더하니 컴퓨터 안에서 놀기만도 쉽지 않군요. 이렇게 더운 여름에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견뎠을까요?
초복이고 하니 오늘은 여러분을 물가로 모셔다 드립니다.
오늘 그림은 조선 정조- 순조 년간에 활발하게 활동한 화가 김득신의 작품 <천렵도>입니다.
김득신이 영조 30년에 출생하여 순조 22년에 몰하였으니 김홍도와 시기가 거의 겹칩니다. 단원이 아홉살 연상이지요. 김득신은 대대로 도화서 화원을 지낸 화원 명문가의 일원이었고 그 자신도 도화서의 뛰어난 화원으로 김홍도, 신한평(신윤복의 父)과 더불어 정조 어진화사에 참여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얼핏 보면 김홍도의 그림과 헷갈릴 만큼 화풍이 닮았습니다. 같은 시기의 화원이기도 했고 당대에 이미 조선최고화원의 칭호를 들은 단원이니 아무래도 영향을 받았겠지요. 도석인물(道釋人物), 산수, 영모(翎毛)등이 특히 뛰어난데 특히나 산수화에서 단원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풍속화에서도, 등장인물에 대한 따뜻하고 해학적인 시선이 느껴져서 더더욱 정감어린 그림을 보여줍니다.
오늘 물가의 남자들 머리 형태를 보아하니, 머리를 땋아올려서 민상투를 틀었군요. 망건이나 다른 치장이 없는 머리로 속어로는 고작이라고도 합니다. 반가의 남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머리형태였습니다. 나무 뒤에 서 있는 남자나 맨 앞에 등을 보이고 앉은 사람은 아직 관례를 올리지 못한 소년이나 청년쯤 되었겠지요.
굵고 단단한 붓이 그린 나룻배는 아주 튼튼할 것 같지요? 놀이삼아 띄우는 한가한 배가 아니라 이 배로 사람과 곡식을 실어나르고 손님이 없을 때는 물고기를 잡으며 업을 삼는 것처럼 보여요.
오늘 하루는 바쁜 농사일이나 고기잡이일을 잠시 놓고 천렵을 하며 쉬려는 모야입니다. 찬이 없이 바닥에 그릇을 놓고 강에서 방금 잡은 물고기로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뒤쪽에 앉은 아저씨는 아예 술병을 독차지하고 마시고 있네요. 저러다 취하시겠어요.
양반들의 천렵처럼, 시종들이 고기를 굽고 물가에 따라온 꽃같은 기생들이 어울려 노는 거나한 자리는 아니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이렇게 조촐하게 술잔을 나누는 천렵도 또한 멋이고 맛이지 않겠습니까?
제 고향은 백마강이 멀리 보이는 시골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강물에 지붕없는 뗏목을 띄워놓고 조개를 캐고 강가에서 고기를 잡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지요. 백마강 한 가운데 모래섬이 커지고 유속이 느려지면서 제 기억에는 그렇게나 넓고 컸던 강도 점점 좁아져서 얼마 전에 가 보니 강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한 개천이 되어버렸더군요. 추억과 더불어 사라진 고향의 모습이 섭섭하였습니다.
그 강에서 붕어나 빠가사리, 참게를 잡고 손바닥보다 더 커다란 말조개를 통에 담아 으쓱거리며 오던 오빠들 생각이 납니다.
살면서 고단한 날들이 즐거운 날보다 더 많다고는 하여도, 저런 추억들이 우리 살이(生)의 갈피갈피에 서려있어서 그 추억을 돌아보며 또 견디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여름 잘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