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9. 22:55

02/05/2006 03:47 pm공개조회수 0 8

지금읽는 책-금각사로부터 트랙백


일본에서 느낀 점 하나가, 일본에니메이션의 바탕이 일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거리 어디를 가나, 그 시점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타들의 얼굴을 광고판을 통해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지요.가전제품이나 자동차나, 하다못해 드링크제 하나까지 몇몇의 스타들이 모두 엇비슷하게 나오는데 비해, 일본은 그 자리를 만화나 인형들이 차지하고 있었다오.
동네의 빵집이나 국수집은 물론이고 국책은행이나 거대한 기업 같은 데도 우리같으면 좀 어깨에 힘줄 법한 광고판까지도요.
저건 무슨 차일까요?
바로 한국방송 지부의 관용차였답니다. 그러니까 바로 kbs.
놀랍죠?
현지의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이겠지만 와 정말 놀랐어요.
일상에서 만드는 이런 문화가 일본 만화의 세계화가 되는 힘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비가 오는 월요일 이른 아침, 지방에서 효도관광차 온 것 같은 어르신들이 엄청 많았다오.




금각사 네이버 사전: 본래 무로마치막부시대의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97년 지은 별장이었으나, 그가 죽자 유언에 따라 로쿠온사라는 선종사찰로 바뀌었다. 이 로쿠온사가 긴카쿠사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3층 누각 긴카쿠[金閣]때문인데, 긴카쿠는 무로마치 전기의 기타야마 문화를 상징하는 건물이다.3층 건물로 각층마다 시대가 다르다. 1층은 후지와라기, 2층은 가마쿠라기, 3층은
당대(唐代)양식으로 각 시대의 양식을 독창적으로 절충하였다. 1층은 침전과 거실로 쓰이며, 2층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셔두었다. 3층은 선종 불전이다. 이중 2층과 3층은 옻칠을 한 위에
금박을 입혔다.1950년 한 사미승에 의하여 불에 타 없어졌으며 현 건물은 1955년에 재건한 것이다. 금칠은 1962년에 했다.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이를 소재로 해서 1956년 장편소설 <금각사>를 썼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가 먼저 떠오릅니다.
현란한 미문의 소설가.
일본극우의 발흥을 외치며 할복한 인물..
기분이 참 묘해질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비오는 날이라 대체로 사진이 어둡네요
정원은 방금 다녀온 은각사가 훨씬 더 고즈넉하고 안온합니다.
당나라때의 정원을 본따서 조성했다는데 본래의 중국식정원을 본 적이 없어서 일본고유의 정원과는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군요.



저것이 바로 그 금칠한 전각이랍니다.
일년에 한번씩 금칠을 새로 한다네요.
요기는 포토존이었는지 관광객들이 무지 붐비는 자리였습니다.
머 우쨋든, 금각사 증명사진이라니 비비적거리며 끼어들어서 셔터를 누릅니다.





어때요 멋있어보이나요?
사진으로 보면 좀 나아보이는데 실제로 가서 본 느낌은 지은이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에 금칠만 잔뜩 해놓은, 기품같은 것은 없는 덤덤함 그것이었습니다.
돈칠만 잔뜩 해놓았군..;;
솔직히 그런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번쩍 번쩍 합니다.
흠..;;;그렇군.
- 뭐 이정도의 감상만.



여전히 일본절은 그냥 불도를 닦는 절 같지는 않다는 생각.
저 난간에 기대어 연못을 바라보는 당나라 여인네의 비단치맛자락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당나라 양식이라니 기모노여인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뭔 전각인가 슬쩍 들여다보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여전히 작은 오솔길 하나 이끼 한뼘에까지 세세히 손이 간 흔적들.
여기서도 관광객 만큼이나 많은 정원사들을 볼 수가 있었지요.




연못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바퀴 휭 돌아볼만한 좁은 연못인데 저 조각배는 그냥 풍취만 자아내려고 매놓은 거겠지요?
금칠번쩍한 처마보다는 차라리 저 고아한 작은 난간이 더 눈길을 끄는군요.



금각사의 아름다움은 비에 젖은 저 이파리 하나만도 못하더군요.
원체가 일본의 정서를 모르는 객의 무심탓이겠지만.



백사(白蛇)의 무덤이라는 안내판이 있더군요.
흰뱀의 전설이 여기 있나보지요?
자세한 것은 모르겠고, 관광객들이 기원하면서 던진 동전이 많습니다.



자. - 이제는 마지막 여정인 니죠성으로 갑니다.
비가 조금씩 그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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