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풍죽도 그림 이야기
13. 성재수간도
소금눈물
2011. 11. 11. 15:59

성재수간(聲在樹間)', '소리는 나무 사이에 있다'는 뜻으로, 중국 당송8대가의 하나였던 구양수의 '추성부'에 나오는 구절이지요.
구양자, 바야흐로 밤이라 책을 읽는데, 소리가 서남으로부터 오는 것이 있음을 들은지라, 놀라듯이 소리를 듣고서 말하였다. "이상도 하구나!" 처음에는 비 오는 소리 같던 것이 음산한 바람 소리 같이 들리더니, 문득 기운차게 뛰어올라 물결 부딪치는 소리로다.
마치 파도가 밤에 놀라며 바람 비가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듯 하니 그것이 물건에 닿으매 칼소리며 무딘 쇠붙이 맞부딪치는 소리를 하여 금과 철이 다 운다. 또 마치 적을 향하는 병사가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호령도 들리지 아니하고 다만 사람과 말의 가는 소리만 들린다.
내 동자에게 말하기를 ;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너 나가서 이를 보고 오너라." 동자가 대답하길; "별과 달은 희고 맑고 은하수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소리는 나무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나는 말하였다. "아! 슬프도다! 이것이 가을 소리로다. 어찌하여 왔는가?"
대개 저 가을의 모양, 그 빛은 참담하여 안개 흩어지고 구름걷히며, 그 모양은 맑고도 밝아 하늘높고 햇빛 투명하며, 그 기운은 무섭도록 차가워서 사람의 살과 뼈를 찌르는 듯하며,
그 마음은 몹시 쓸쓸하여 산천이 적적하고 고요하다. 그러므로그 소리 몹시 구슬프고 절박하며 부르짖듯 세차게 일어난다. 풍성한 풀은 짙은 녹색으로 화문 놓으면서 다투어 무성하고,
아름다운 나무 시퍼렇게 무성하여 기뻐할 만하더니, 풀은 가을 소리에 떨리어 빛이 변하고 나무도 이것을 만나서 잎이 떨어지니, 그 꺾여 시들고 영락하는 까닭은 곧 하나의 기운이 너무 매운 때문인 것이다.
대저 가을은 형관이요, 시절에 있어서는 음기이다. 또 무기의 象이라, 오행에 있어서는 금이되니, 이것을 천지의 의기라고 한다. 항상 쌀쌀하게 말려 죽이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는다.
하늘이 만물에 있어서 봄에는 생장하고 가을에는 열매 맺는다. 그러므로 그것이 음악에 있어서는 商聲이 서쪽의 음악을 주관하고, 이칙(夷則)은 칠월의 음률이 되니, 商은 傷이라, 만물이 이미 늙어서 슬퍼하고 상심하는 것이다. 夷는 살육이라, 만물이 한창 때를 지나면 마땅히 죽게 되는 것이다.
슬프다! 초목은 감정이 없는 것이긴 하나 때에 있어서 나부끼어 떨어진다. 사람은 움직이는 물건이 되어 오직 만물의 영장인지라. 백 가지 근심이 그 마음을 감동시키며, 만 가지 일이 그 몸을 수고롭혀서 마음 속에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의를 움직인다.
그런데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생각하고, 그 지혜로 능치 못한 바를 근심함에랴! 그 윤택 흐르듯 붉은 것이 고목이 되고, 그 칠흑같이 검은 것이 백발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찌하여 금석의 바탕도 아닌데 초목과 더불어 번영함을 다투고자 하는고! 생각건대 누가 이것을 손상케 하든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두고 한하겠는가!
동자는 대답도 아니하고 머리를 떨군 채 잠자고 다만 들리느니 사방 벽에서 벌레 소리만이 직직 나의 탄식하는 소리를 더해주는 듯하여라.
제게는 구양수의 <추성부>보다는 이 글을 읽고 그린 단원의 <추성부도>가 훨씬 마음에 먼저 다가옵니다만.
늦가을밤 책을 읽는 노처사의 귀에 홀연히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립고 애달픈 오욕칠정도 다 지나가버린 옛일이 되어있을 노인에게 홀연히 뜰에서 나는 바람소리는 쓸쓸하고 처연한 심사, 삶의 끄트머리에서 돌아보는 삶의 이치를 떠올리게 하지요. 그 잎과 가지가 푸르고 싱싱하여 도무지 무서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는 젊은 동자에게는 이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겠구요.
김창은 나이가 들었습니다.
죽을 날이 가까운 노인이 되어 문득 돌아보면 젊은날의 추억이 아련하고 그립기만 합니다.
젊음과 꿈을 불태웠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자부심, 떠나간 사람들을 목메이게 그리워하는 창의 노년.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아끼고 지켜온 가치들은 모두 스러졌고, 지난 것은 모두 부정되고 마모되어갑니다. 그러나 장용영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 청춘을 불태우며 따르던 왕, 다시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은 스러질수도 약해질수도 없는 그 삶의 유일한 자부이자 그를 지탱하는 평생의 기둥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쓸쓸한 늦가을밤, 초옥의 뜰을 휩쓸고 가는 가을바람속에서 오지 않는 누군가의 발걸음을 기다리며 귀를 세우고 있는 사람,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다시 올까요. 우리 역사에 다시 와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