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지도자에게 핵심은 비전이거든요. 비전이 뭐냐.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전이 자기의 단순한 희망사항이냐, 아니면 역사의 법칙과 맞닿아 있느냐,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비전이라면 역사의 법칙 위에 서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전제로 선택 가능한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화려한 장밋빛 비전이라 할지라도, 오색 무지개 비전이라 할지라도, 역사의 법칙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제대로 현실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전은 역사의 법칙 속에서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전략과 결합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비전과 전략이라는 것이 역사의식이고, 역사를 보는,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이고, 그 토대 위에서 자기의 희망 사항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p.250-251
그의 부재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 자리를 확인하며 그가 꾸었던 꿈을 반추하며 추억하는 것은 아직은 너무 힘든 일이다. 놓아줄 수 없는 사람, 놓아서는 안 되는 노무현이라는 가치, 거듭 읽고 생각하며 나는 그렇게 그를 내 안으로 불러들일 생각이다. 이제는 기록을 통해서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아직도 눈물 없이 그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내 심장은 굳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눈물 많은 내게 이 책은 이제 정신 좀 추스르고 그를 생각하라고 써준 것 같은 책이다. 그가 그토록 남기고 싶었던 그의 유산, 그가 믿고 의지하던 그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정치인 노무현은 사람들이 많이 안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서 거듭 낙선하면서 이 땅에서 지역갈등이 사라지는 그 날이 와야 비로소 온전한 상식과 평등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그의 신념대로 거듭 떨어지고 외면 받으면서 그 험난한 길을 간다. 기회주의와 권력만능주의의 한국 정치판에서 그는 참말 아주 보기 드문 신념의 정치인이었고 도무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거나 굽힐 줄을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 불렀다. 그리운 바보... 노무현이 간 그 길을 이제 다른 누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오연호와의 대담집인 이 책은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기사’라기보다는 그의 육성테이프처럼 느껴진다. 능수능란, 표리부동의 정치인들의 언어를 생래적으로 못 견뎌했던 그의 생애처럼 이 책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 그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던 그의 적들이 생각하는 그의 목소리는 어떠했을지는 몰라도, 국민들이 기억하는 대통령 노무현의 목소리는 늘 수줍고 고민 많고 친근하고 가까웠다. 만인지상의 최고 권력자가 ‘아침담화’로 사기치는 라디오 방송의 언어가 아니었다.
참여 정부 5년, 그리고 퇴임을 앞둔 그의 소회가 진솔하게 담겨있다. 그를 지지하던 이들이 떠나는 것을 막지 못하는 미안함, 부끄러움, 그럼에도 한 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속마음과 통치자로서의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민하고 상처받아야 했던 일들, 또 이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진정으로 꿈꾸었던 그 가치실현을 위해 행복한 기대에 들떴던 모습들.
그가 바라보던 그 꿈의 목표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진정한 권력은 시민주권이라 믿었던 그, 그의 잠자리에 남긴 작은 바윗돌의 표지처럼 진정으로 그리 살다간 사람.
그의 죽음 앞에서,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오열하는 국민들이 이 말들을 받아보기에는 그의 죽음은 너무나 잔인하다. 유시민의 말마따나, 신격을 갖춘 완벽한 인간은 결코 아니었지만, 누구도 이처럼 뜨겁고 진솔하게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소진하고 갈 수 있었을까.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사의 평가를 믿었던 사람, 이제 그 자신이 역사가 되어 훗날 오는 사람의 저울이 된 사람.
저 윗 구절을 나는 몇 번이고 되풀이 읽는다. 아침에 눈을 떠 신문을 펼쳐보기가 두려운 오늘에 이르러, 그의 부재가 너무나 비통하고 그의 목소리가 그리워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역사의 비전을 갖고 자신의 믿음을 온전히 그 비전 안에서 실현시키고 싶어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사상가의 모습을 가졌고 시민의 선생이 되어 정치학을 가르치고 싶었던 그 사람.
어쩌면 그는 이처럼 나약하고 부박한세상에 희망을놓지를 못하였던가.
그렇게 짓밟히고 모욕당하면서도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세상을 향한 분노를 멈추지 못했던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싸구려인 인간들에게 그렇게 맥없이 쓰러지고 말다니.
이제 나는 어둠속에서 부엉이가 날아오르기를 기다린다.
다시 그와 같은 사람이 우리 역사에서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라 이제 걸어갈 노무현의 아이들을 다독이며 그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것이 이제 기성이 된 나의 길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뤄지리라 믿었기 때문에 그가 신념을 걸었던 것이 아니었듯, 그가 남긴 세상에 내가 맥없이 지쳐 쓰러지기엔 나는 그를 너무나도 깊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치열하게 '역사가 자신에게 준 소명'을 생각하며, 힘든길이지만, 어쩌면 이루리라는 희망을 찾을 수 없지만 그게 자신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길을 기어코 걸어간 사람,위대했던 한바보가너무나 가볍고 치졸했던 그의 국민, 아니그의 시민에게 남긴 정치학 교과서,<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혹독한 시련의 날들에 내가 지치고 외로워 우는 날이 올 지라도 나는 그의 이름을 놓지 않으리라. 이 책을 들여다보고 그의 목소리를 찾으며..
제목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지은이 : 오연호
펴낸 곳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