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너 어디 있느냐

소금눈물 2011. 11. 24. 21:09

 

10/20/2006 10:34 pm공개조회수 1 4



아침 중국어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중국배우가 있느냐고 물었다.
여명, 장만옥, 이소룡도 나왔다. 그 이름 끝에 장지이도 나왔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닥이던 중국인 선생의 이마가 살풋 찌푸러지는가 하더니
"一般的中人 不喜"y"
나는 이해한다고 했다.
그녀가 중국인들에게 그런 반감을 불러오게 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又不喜"y,又不喜"日本."
그녀도 일본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네 중국도 역시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나는 중얼거렸다.

소식을 외면한지 퍽 되었다.
일컬어 뉴스게시판 죽순이가 말이다.
한반도가 세계인의 뉴스초점으로 떠올라 기뻤던 적이 언제였던가. 월드컵 이후로 기억이 흐리다. 그 월드컵의 기쁨 조차, 어쩐지 석연찮은 우울을 다 지우지 못하고였다.

신문을 펴고 나는 다 읽지도 못한 것을 접어버렸다.
새로 바꾼 환한 새 안경을 쓰고도 세상은 밝은 빛이 아니었다.
더러운 힘과 무지한 주먹과 답답한 한숨만 세상에 가득하다.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고 몇해 전, 헌책방에서 업어온 시집을 펼쳤다.
이 아이도 나만큼이나 답답하고 슬프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 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 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 늙은이도 더부사리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설어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뭉등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백석 <모닥불>


작고 보잘것 없고 애틋한 것들이 모여 발을 옹송그리고 모닥불을 쬔다.
그 모닥불가에는 핵도 없고 분단도 없고 그저 따뜻하고 이쁜 것들 뿐이다.
모두 모두 어깨를 겯고 기대고 맨 손바닥을 활짝 단풍잎처럼 펴고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본다.
따뜻한 불꽃에 달아오른 볼이 사과처럼 바알갛다.
짚검불도 개터럭도 닭의짓도 타는 모닥불, 그 모닥불에 재당도, 초시도, 더부살이 불쌍한 아이도, 수줍은 새사위도, 떠돌이 땜쟁이에, 큰 개, 작은 개 가리지 않고 모두모두 따뜻하고 다정하게 모닥불만 둘러싸고 정겹다.

어미아비 없어 설어운 불쌍한 몽둥발이의 슬픈 우리 역사도 가만히 고개를 기대고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닥불이 참 그립다.
그립다가, 나는 어쩐지 자꾸 서럽고, 그래서 눈물이 난다.



제목 : 越北, 在北 해금시인 99선 "너 어디 있느냐"
펴낸이 : 김윤식
펴낸 곳: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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