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함께 가는 세상
2005년 겨울, 어느 농부의 죽음.
소금눈물
2011. 11. 13. 20:22

<고 홍덕표님...>
평생을 남의 땅에서 소작을 붙여먹는 게 전부였던 늙은 농부가,
그 붙여먹던 땅마저 뺏기게 되었는데
첩첩히 허리까지 쌓이는 눈발을 뚫고 서울로 와서
난생 처음 저 무서운 하늘에 주먹을 쥐고 울어보다가
그 울부짖음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독한 몰매에 맞아 세상을 떴단다.
남의 나라였던 식민지 땅에서 태어나서
대동아전쟁도 넘고 인공치하도 넘었는데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목구멍이라
엄동에 맞아죽었단다.
그 손에 가져본 것은 평생 쌀보리 거두는 낫자루밖에 몰랐던 이가.
땅이 가르치는 숨결밖에 몰랐던 이가.
이놈의 나라는 뉘땅인가
이땅의 사람들은 쌀밥도 아니먹는다더냐.
너희를 내고 기른 땅을 이리 모욕하고
그땅의 지킴이를 이렇게 뭇매로 쳐죽이고
아아 무서라.
저 울음을 모르고도 잘도 자는 독한 세상.
아고 아부지
낳으실 적에는 이름하나 옳게 올릴 문서에나 낳아주실 것이지
가진 것은 평생 남의 이름, 남의 문서.
가는 날도 어쩌면 이리 춥고 시려
허리까지 쌓인 눈발 속에서
그 피눈물 얼어서 발등 깨지게 걸어가시는 먼 길.
농투사니는 사람이 아니야
이땅의 사람이 아니야
다시는 징글징글헌 이눔의 땅에 나지 마시라고
꿈에라도 흙밭은 쳐다보지도 마시라고
허청허청 걸어가시는 눈밭길에 맨발로 보내며
아부지.
우리를 시러베자식으로 만들고 가시는
서러운 아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