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 묵을 숙소인 티- 아일랜드로 가는 길. 이 여정에는 산방산과 송악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째 구름이 조금씩 뭉쳐지고 있네요. 일기예보는 분명 내내 쾌청이라고 했는데요.
멀리 산방산이 보입니다. <탐나는도다>의 주인공, 산방골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고을입니다.
짙푸른 청녹색 바다물결위에 뭉툭 솟은 바위산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네요. 이어져 흐르는 산 어깨자락이 없어서일까요.
피안의 세상 같기도 하고.
내내 유리구슬처럼 청명하고 아름답던 하늘이 조금씩 낮게 드리워지는 바다.. 수면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두 개로도 세 개로도 보이는 송악산 앞 치마자락에 펼쳐진 형제섬이랍니다.
산방산을 뒤로 하고 송악산엘 오릅니다.
이런 바다색은 또 처음 봐요.
비 묻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 산에 깃든 슬프고 아픈 사연이 많은데 아무래도 서둘러 올라야할 것 같습니다.
잠깐 모네의 그림 <양산을 든 여인>을 떠올렸습니다. 바람이 부는 언덕을 오르는 저 멋드러진 여인들은 누구일까요 ^^
뉘라서 저 바다를 밑이 없다 하시는고 백천 길 바다라도닿이는 곳 있으리라 님 그린 이 마음이야 그릴 수록 깊으이다
이만 년 전에 마음을 스친 사람이 이 섬이 고향이라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유치한 삼류연애소설속의 주인공처럼 지금은 너무 잘 사는 근황을 여행을 떠나기 전 잠깐 들었습니다. 인터넷 세상은 참 재미가 없습니다. 수십 년 전에 스쳐간, 죽을 때까지도 만날 일 없을 까마득한 과거의 사람도, 알려고만 하면 자판질 몇 번에 금방 떠올라, 세월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건...조금 서글픕니다.
아 유명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빛나는 사람은, 잘난 사람은 더더욱 되지 말아야지.
그렇게 살지 못한 게 참 다행입니다. 이렇게 후줄근하게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왜 갑자기 시리도록 푸른 저 바다를 보고 심란해지는 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하늘이 심상치 않지요? 바람이 거세지네요.
송악산은 아픈 상처가 많은 산입니다. 일제의 해군진지가 이 산 아래 군데군데 동굴로 남겨있습니다. 언젠가 티비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제주는 이렇게도 아름답고 이렇게도 슬픈 섬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4.때는 이 산에서 또 애꿎은 목숨이 많이 죽었다고 하네요. 제주의 어느 오름, 어느 들판에 시리고 아픈 사연이 없겠습니까마는...
가파른 화산 분화구가 산 한 중간에 푹 패어서, 이쪽에서 바라보는 건너편은 완만한 능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바로 눈 앞이 까마득한 절벽입니다. 바로 90도 각도로 꺾어지는 천애절벽이라 내려다보기도 아찔합니다.
건너편 능선 중간쯤 흰 점이 보이길래 무엇인가 하고 사진기 줌을 땡겨보았더니
산양일까요? 아슬아슬하게 능선을 타면서도 태평히풀을 뜯고있는 녀석을 보며,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못하고 어질어질 서 있는 나는 참 경이롭기만 합니다.
송악산분화구와 해안변이 자연보전지구 및 잔연환경지구 등으로 지정되면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답니다. 천연기념물이 많아 학술상 높은 가치가 있어서 무분별한 인간의 손길과 훼손을 꺼려하기 때문이지요. 기어이 올라 경치를 확인하려는 이 천박한 이기가 부끄럽습니다.
사실 붕괴위험이 커서 안전을 생각해서 굳이 오르시는 건말리고 싶습니다.
아..사진으로는 이 아득한 절벽이 표현이 안 되네요. 사진 바로 아래쪽이 위쪽과 만나는 능선이 절대 아닙니다. 조금 가까와보이는 아래쪽은 바로 뚝 떨어지는 낭떠러지고 한참 너머의 능선이 올라오고 있는 건데요.
이런~! 더 머무르지 못하겠어요.
갈수록 짙어지는 바다. 바다가 부푸는 것처럼 보입니다.
송악산을 내려와 다시 산방산 아래. 산방산 아래 아름답게 펼쳐졌던 산방골 들판을...찾으려면 좀 곤란하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