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길에 서서
벌교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소금눈물
2011. 11. 13. 11:54

벌써 다녀온지 한 달이나 다 된 이야기를 끝을 맺지 못하고 차일피일 오늘까지 끌고 왔습니다.
밥벌이야 늘 정신없이 바쁘고 어수선한데, 봄 되면서 이러저러한 업무가 늘어나고 그게 또 관(官)일까지 끼어드는 거라 매달려 있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처음 태백산맥을 본 것이 대학 2학년 때였군요.
<한국문학>에 연재되던 소설이었지요. 달이 바뀔 때마다 아르바이트하던 의대 도서관에한국문학 들어오기만 손꼽아 기다리며 보냈습니다. 흰 꽃. 참말로 그 이름처럼 곱던 소화와 하섭의 가슴 아픈 사랑, 김범우, 염상구, 염상진, 외서댁, 심재모.. 정말 하나하나 살아있는 그 사람들이 그 여름, 가을 내 가슴에서 살았습니다. 그 여름엔 분기도 눈물도 많던 한 젊은 국회의원도 알았고... 잊을 수 없는 해였습니다.
벌교는 물론 무안, 부안도 구별 못하는, 전라도와는 사돈의 팔촌도 닿지 않는 충청도 초박이 촌사람이, 순천가서 인물자랑말고 여수가서 돈자랑말고 벌교가서 주먹자랑하지말라 어쩌고 주절거리면서 되도않는 아는 체를할 수 있는 것은 이 책 덕분입니다.
문학관 생겼다는 말만 듣고 이제야 와보네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작가의 친필 글씨가 문학관 전면에새겨져 있습니다. 문학이, 예술이 종국에는 어떻게 인간에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순수냐 참여냐, 이 해묵은 논쟁을 새삼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떠나서 어떤 문학이, 예술이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까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말이겠지요.

직접 그리신 소설의 무대 지도입니다.
저 일대를 얼마나 돌아다니고 고민하며 인물과 사건을 배치하고 다시 고쳐그리고 취재를 하셨을까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취재수첩.
아무 생각도 준비도 없이, 그저 플라스틱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고 한 삼 분 생각하다 줄줄 떨어내는 돌말 사람들을 생각하다, 이 꼼꼼한 취재를 보며 저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후유..

소설 <태백산맥>은 단지 화제를 일으켰던 대하소설,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우리의 피어린 분단기에 대한 직접적인 조명, 아니 날카로운칼날이었다고 할까요.
어렸을때부터 어지간히는 읽었다고 생각한 저였지만 이 책은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묵시적으로 외면, 또는 침묵을 강요당했지요. 가르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한 시기가, 그 시대의 인물이 살아있는 이 시점에서도 그 시간대는 뭉텅 잘라져 있는 셈이지요. 말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로.
이 작품은 발표되는 즉시단번에 이적성 논란에 휩싸이며 지리한 법정공방에 시달리게 됩니다.
엄청난 환호와 또 그만큼 맞서는 비난과 공격들, 거기에서 자유로와지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출판사를 바꾸어가며 이어지는 태백산맥의 이야기들.
표지가 다 헤어지도록 손때를 탄 대학 도서관의 책을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작가가 직접 쓴 태백산맥 육필원고 16,000매입니다.
엄청난 양이지요?

가족과 독자가 직접 필사했다는 원고들.

문학관은 아주 쾌적하고 단정합니다.
통유리창으로 외부의 대리석 조각 벽면이 보이네요.

2층에서 내려다 본 모습.
문학관에는 태백산맥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 귀로 들을 수 있는 자료도 있고, 작품을 집필하면서 씌여진 작가의 소품들과 취재수첩, 자료들이 많습니다. 2층에는 편안히 책을 읽으면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구요.



그 시간에 대한 정면 도전, 침묵하는 세상에 대해,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외친 문학의 힘... 파장은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빨갱이, 좌익, 공산당, 이 말은 규정하는 자에 의해 모든 상식과 법을 뛰어넘는 무소불위의 무기로 작용했습니다. 그렇게 규정된 자는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직업과 생명을 위협당하며 불안에 떨어야 했고요. 작가 자신은 물론 그 가족과 출판사, 이 책을 호평하는 평론가에 이르기까지 무지막지한 살해협박에 시달립니다.
그 와중에 오고간 고발장들과 출국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당시 신원조회 서류들이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문학관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현부자네'집에 들렀습니다.
소화와 하섭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깃든 무대지요.

어느새 저녁햇살이 마루에 어리고 있습니다.
가상의 무대였겠으나 반질반질 손때가 밴 마루를 보니 참 반갑습니다.
지방토호의 알찬 살림 규모와 함께 이 집 마당을 오가며 힘겹게 살았던 소작농, 노비의 모습들이 어립니다. 가진 자와 빼앗기는 자, 사람 사는 세상이면 어느 시절에나 있는 일이지만 이 마루에 어린 조용한 평화는 결코 가벼이 말 할수 없겠지요.
그러고보니 참 오래 전에 읽었네요.
태백산맥에서 김범우를 참 좋아했지요. 이상주의자들은 언제나 현실과 불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추악했던 우리 현대사가 더 그렇게 몬 것인지 저는 오래 괴로왔습니다.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불행하게 떠날 수 밖에 없는지, 영영 그런 것인지...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소화가 너무 가슴 아파서, 착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 아파서 그때처럼 또 몇 번을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십 년을 넘게 생생한 이 감동은 여전하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이 삶에 기여하는 바도 그렇겠지만, 그가 난 땅에 내리는 이런 선물도 참 대단합니다. 아마도 저처럼 태백산맥으로 인해 벌교와 순천을 문학의 향기로 기억하게 된 이들이 많겠지요. 이 일대가 이런 작품을 낳게 된 역사의 아픔은 무어라 위로할 길이 없지만 상처를 품어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후대는 또 이 놀라운 예술작품의 자궁으로 이 고장을 기릴테지요. 다모답사를 다니면서도 친구들과 이 일대를 돌아다니다보면 자연스레 태백산맥 이야기를 하게 되고 벌교꼬막을 먹을 때도 소화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니 어떤 고장이 이런 축복을 또 받을까 싶습니다.
짧은 하루 여정이었지만 참 알차게 잘 다녀왔습니다.
함께 해주신 엘도라도님, 너 내려와님, 오타드님 거듭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우리 또 다시 이렇게 길 위에서 만나 웃을 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