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길에 서서
월정사
소금눈물
2011. 11. 13. 11:37

어느새 이 여행의 끝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숙소는 오대산에 있는 펜션입니다.
밤새 내린 폭우와 번개치는 소리와 잠을 못 이루고 하얗게 새웠습니다.
어제 운전이 어지간히도 힘들었던지 친구들은 다들 곤히 잠들었는데 내내 뒤척이면서 가까이서 들리는 개울물소리에 이러다가 가는 길이 막히지나 않는지 걱정이 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서울로 가는 길이 얼마나 아득할 지 몰라서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서둘러 깨웁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방은 조용한데 지난 밤에 내린 비가 개울을 흘러가는 물소리가 정말 대단하네요.
어젯밤 늦게 들어와서 잠만 겨우 자고 나가는 거라 몰랐는데 수영장도 있었군요. 느긋한 여정이었으면 산책도 하면 좋았을 것을... 아쉽네요.
자.. 암튼 일어나 볼까요?

바로 근처에 월정사도 있고 상원사도 있다는데 언제 다시 이 곳에 들를 지 몰라 욕심은 굴뚝 같은데 시간이...
이제 겨우 여섯시, 그래 월정사만이라도 들러보자 까짓거~!
길에 나서면서 비가 잠깐 그어졌습니다.
길이 참 이쁘지요?
비가 막 개인 이른 새벽, 고요한 오솔길이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다울까요.
월정사 가는 길입니다.

너무 이뻐서 차를 잠깐 세웠습니다.
낙엽이 화르르 날리는 늦가을이라도, 한 겨울의 눈길이라도 정말 이쁠 거 같아요.
지금 사진을 보고 있어도 이곳이 다시 그립네요.
절구경을 다니면서 가람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이뻐서 좋았던 적이 여러 번 있지요.
월정사도 아마 이 새벽길이 오래오래 생각날 겁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매표소도 문을 열지 않았네요.
겁도 없이 그냥 지나쳐 갑니다.
어째 가다보니 일주문도 휘딱 지나치고 주차장도 지나치고 옴마;;; 여기가 어디여?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바로 그 때 나타난 모습!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 같지요?
월정사 바로 옆 암자로 향하는 다리였는데, 멀어서 그 암자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어요.
빗물에 불은 계곡이 걱정이 되어 나오셨는지, 아니면 아침 산책 중이셨는지 스님 한 분이 뒷짐을 지고 다리에 서 계셨는데 그 모습이 또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발이 멈춰졌습니다.
스님의 고요한 시간을 방해하기가 죄송스러워서 멀리서도 발뒤꿈치를 들고 가만가만 걸었습니다.

외부인의 시선이 느껴지셨는지 스님은 바로 들어가셨습니다.
저기, 스님;;;
이 아름다운 다리와 가시는 암자가 어딘지 좀...
네..ㅜ.ㅜ;; 죄송합니다.
차마 여쭐 수가 없었네요.

스님이 자리를 비우시고 얼른 달려가서 찍었습니다.
마치 피안의 세계를 건너가는 다리인 듯 합니다.
참 아름답지요?
교각 아치의 선이, 선암사 선임교와는 또 다른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줍니다.



물안개가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호젓하고도 적요한 새벽길이 정말 꿈 속처럼 아름답습니다.

절의 중심이랄 수 있는 곳, 적광전입니다.
본존불로 석가모니불을 모시면 대웅전,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적광전이라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절의 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이 아닌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시다네요.
원래 월정사는 법당 중창 당시에 현판을 대웅전으로 쓰셨는데 탄허스님의 오대산 수도원을 기념하기 위해 결사의 주 경전이었던 화엄경의 주불(主佛)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현판을 적광전으로 고쳤답니다.

지난번 용문사 기행에서 말씀드린 대로 삼성각은 불교에서 연유한 것은 아니고, 도교신앙과 토착신앙의 모습이 불교와 합쳐지면서 절 한 쪽에 이렇게 남은 것이지요.
맞배지붕의 깔끔한 선과 문짝 궁창의 색이 참 잘 어울립니다.
단청이 깔끔하고 아름답네요. 얼마 안 되었나봐요.

적광전의 옆에서 본 모습입니다.


범종루인데 저는 범종루보다는 옆 건물의 지붕선의 폭 패인 모습이 눈에 끌렸습니다.
치맛자락을 깊게 내린 것 같네요.
범종루는 목어, 운판, 범종, 그리고 법고 이렇게 사물을 두는 곳입니다.
주련 옆의 장식이 참 화려합니다.

적광전 궁창의 귀면화입니다.
용과 귀면이 헷갈린다구요?
사찰의 귀면상은 "낯휘"라고도 하는데 낯은 아시다시피 얼굴을 뜻하고 휘(暉)는 몇 가지 색깔로 화려하게 채색한 것이랍니다. 용은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거나 아무 것도 물고 있지 않은데 귀면화는 입에 연꽃이나 풀을 물고 있는 모습으로 흔히 보여집니다. 민가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사찰의 귀면화는 불법수호의 기능과 사위스런 기운을 막는 의미로 그려지지요.
절에 가시게 되면 이제부터 용과 귀면을 구분해서 확인해보세요 ^^
일주문이나 평방 등, 찾으려고만 하면 참 많은 곳에 구석구석 많이 보인답니다.

월정사에서 가장 유명한 구층석탑, 교과서에서 만나던 바로 그 석탑입니다.
불가에서 3은 완전성을 갖춘 수로서, 천, 지 , 인 삼재를 표상하는 수랍니다. 그 삼을 세번 곱한 9는 양이 완성된 수이면서 구천(九天), 99칸집, 구중궁궐 처럼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존귀, 길상의 수를 의미합니다.
연꽃 모양의 기단과 우아한 탑신, 화려한 장식을 단 상륜부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탑입니다.

탑신 옥개석의 부드럽게 말려올라간 선을 보세요.
팔각 몸돌의 지붕선을 마치 손 끝으로 조물락거려 만든 것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이 돌의 장식 같지가 않습니다.
국보 4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적광전 지붕선의 양쪽팔을 중심에서 딱 잡아주면서 수평과 수직을 나누어 상승하는 저 선의 모습이라니.

불가의 사자상은 부처님의 화신으로서, 그 권위와 위엄을 불법을 믿지 않는 자나 악마를 제어하는 동시에, 몸, 입, 마음의 삼업(三業)을 조화하여 모든 악행을 제어합니다.
불제자가 아닌 객이 이른 아침부터 고요한 산사에 발을 들이밀었으니 화가 나셨을까요? ^^;

어떤 신장님이신지, 주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지붕들 사이로 잠깐 드리운 비안개가 수묵화의 한 장면을 만듭니다.

진영당입니다.
절의 개창주나 중창주 같은 고승들의 진영을 모신 곳이랍니다.


에구.. 버릇입니다 버릇 -_-;
앗, 여기 평방에도 귀면화가 보입니다.

여름 수련회중인가 봐요.
조용조용.. 번접한 객은 얼른얼른 비켜줘야지요.

아쉬운 마음으로 월정사를 나오며.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른 곳도 열심히 돌아보고 배우고, 그리고 상원사까지 내쳐 가고 싶지만... 라디오에선 계속 전국 호우 소식을 속보로 보내고 있고, 여기저기 상경길이 정체된다는 말 뿐이니 이쯤에서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할까봅니다.
아름다웠던 월정사, 수묵의 풍경 그대로였던 곳.
오래 생각날 거예요.
언제 다시 가을이 깊어지면 이 길을 찾아올 날이 있을까요.

다모 넉 돌.
조촐한 기념으로, 나섰던 여행길이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도련님의 흔적을 확인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뭐 이것이 다는 아닐테니까요.
곧 또 여장을 꾸릴 겁니다.
다모순례는 계속이니까요.
함께 했던 친구들, 그대들이 있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Forever 다모, 그치지 않을 우리들의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