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길에 서서

동학사 2 (대웅전 )

소금눈물 2011. 11. 13. 10:58

 

09/26/2006 09:25 am공개조회수 0 2




동학사.
이 날은 마침 무슨 잔치가 있었던지 경내에 스님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수행자의 눈은 어찌 그리 맑은지, 속세의 홍진을 멀리함이어서인가. 비껴가는 눈길이 가을나무처럼 청명하다.
동학사는 서기 724년 상원조사가 조그만 암자를 지은 것을 후에 회의(懷義)가 창건하여 이름을 상원사(上願寺)라 맨 처음 칭하였다. 937년(고려 태조 20)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承官) 유차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始祖)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낼 때, 동계사(東鷄祠)를 건축하니 참선승려들이 운집하여 사찰이 커지게 되었고 후에 동학사로 고쳤다고 한다. (네이버 설명)
조선 태조때는 려말의 충신 야은 길재가 고려의 왕족과 정몽주를 위해 기도하였고 후에 세조가 단종을 밀어내면서, 김시습이 생육신과 사육신을 위해 명복을 빌며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절보다 유달리 유교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대웅전.
책에서 보고 가슴 두근거렸던 그 문살을 비로소 확인한다.



바로 이 문살이다.
절을 여러 곳 돌아보고 문살도 어지간히 눈여겨는 보았지만 정말 이런 문양의 문살은 처음 본다.
보통 사찰의 문살은 45도 기울인 빗살문 형태로 여기에 여러가지 꽃이나 추상문양을 넣어 지극히 화려하게 꾸민다.
꽃무늬는 연꽃이나 모란, 국화, 해바라기, 혹은 백일홍을 넣기도 하며 추상화된 꽃도 볼 수가 있다.
범어사의 대웅전문살이나 대흥사 천불전의 꽃문살도 참 화려했던 기억이 난다.



( 여름에 보았던 대흥사의 꽃문살. )




동학사는 이 문살 하나를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듯 싶다.
사군자와 세한삼우(소나무, 대나무,매화)를 어우러지게 투각하여 문 자체로 아름다운 그림이 되게 하였다.
조각된 면의 도드라짐이 부드럽고 섬세해서 장인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겠다.
절에서 흔히 쓰이는 꽃들이 아니고 성리학의 흔적이 깊게 느껴지는 사군자의 문살로 대웅전을 장식하다니.
이 절에 미친 유가의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가을 햇살이 어루만지는 문살을 넋을 놓고 보고 있다.



법당안의 천정.
스님이 독경을 하시는 중이라 밖에서 조심조심 사진 한 컷만 찍고 말았다.
(손떨림.. 으 ;;;;;)
부처님이 설법을 하실 때에 하늘에서 꽃비가 흩어졌다는 일화를 표현하기 위해 부처님 머리 위, 즉 법당 천장에 가득 꽃 그림을 그려올리는데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밖으로 불단이 있다.
불단 머리 위를 용두가 지키고 있고 아마도 그쪽에 닫집이 있을 것이나 경건한 예불시간이라 차마 찍지를 못했다.



대웅전 편액.
편액 글자 밖으로 벽사와 길상, 존귀를 의미하는 물건들이 그려지는데 사진이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기를 다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ㅠㅠ



대웅전 처마와 옆 건물의 선이 다가왔다 멀어지며 만드는 선...

또 길어진다 -_-;

다시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