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11. 16:03

9/25/2011 06:44 pm공개조회수 0 0


 



화표주란 무덤 앞에 세우는 돌기둥, 망부석, 혹은 망주석을 이르는 말입니다.
골짜기에 우뚝 솟은 바위가 정말로 마치 화표주처럼 되었네요. 그렇지만 이 화표주는 좀 다른 뜻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뚝 솟은 까마득한 절벽, 달을 등지고 비스듬히 뒤를 돌아보는 고고한 한마리 학.
어쩐지 화표주는 화암팔경의 그 화표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 같아 좀 찾아보니


송강의 우야시(雨夜詩)에

서녘 화표주의 학을 불러/西招華表鶴

구름 사이에 함께 노닐고지고/相與?雲間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또 다른 시, <화표주 華表柱>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집니다.


華表柱鶴何在
화표주의 학이 언제 있었던가

秋雨冥冥秋草靑 가을비 어둑어둑, 가을풀 푸르네라.

千載一歸喧萬口 천년만에 한 번 돌아와 만 사람을 들썩이니

城郭人民俱有情 성곽과 사람들 함께 有情이네.

鶴亦不能無心否 학도 역시 無心이 안되는가

來旣支離況死生 오기도 지리했는데 하물며 生死에서랴.
曾聞丁也化爲鶴 일찍이 들으니 丁令威가 학이 되고

更見鶴復化爲丁 다시 보니 그 학이 다시 화하여 정령위가 되었다니

爲丁爲鶴無乃勞 丁이 되고 이 되는 것 차라리 수고롭나니

不如一去終雲? 한번가서 구름빗장에 마침보다 못하리라.

設使千載每一歸 설령 천년에 매번 한번씩 온다해도

萬劫半在遼陽城 만겁에 반은 요양성에 있으리니

安有眞仙不忘家 어찌 진선이 집을 잊지 못하여

平分人世與天庭 人世와 천상을 나누어 살겠는가.

吾將沽酒遼陽市 나는 장차 遼陽市에 술을 사서

大醉不省黃庭經 대취한 후에 황정경일랑 살피지 않으리라.


학은 예로부터 고고한 이상을 나타내는 영물이기도 했지요.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관념과 이상의 세계 속의 영물, 신선이 타고 노니는 학과 더불어 어지러운 세상을 벗어나 노닐고 싶은 시인의 꿈이었을까요?

화표학은 중국 한나라 요동사람 정령위가 신선이 되어천년 만에 학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 망주석에 앉았다 시를 읊고 날아갔다는 고사 속의 학입니다. 임금을 향한 그 오매불망의 연정에도 불구하고 유배를 맴돌았던 송강의 속이 이럴 진대, 일개 화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까지 다 올라가고 단군 이래 최고의 화가라는 명예를 당대에나 지금까지 오롯이 받고 있는 단원 김홍도가, 말년에는 가난한 살림에 지필묵 걱정에 아들 학비까지 궁색해진 이야기를 읽다보면 저 만리 창공을 나는 신선의 영물이 아니어도 참말로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을 갖고 싶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휘영청 떠오른 달밤, 달의 높이까지 아득하게 솟은 화표주에 홀로 서서 그 달을 바라보는 학의 처연한 모습이 애닲습니다.

무장으로 가장 영예로운 곳까지 다다라 임금의 신임을 받고 있으나 그 속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이승필. 그의 말년도 이 그림 속의 학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