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연인의 마을

우리들의 행복한 17부

소금눈물 2011. 11. 1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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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냐고,
죽을 힘을 다해 당신에게 가고 있는데,
이제 겨우 그럴 용기가 생겼는데 왜 가라고 하느냐고,
당신을 위해서는 가는 것 밖에 해줄 수 없는 내게 왜 이러냐고 울던 강재.
흐린 눈으로 새벽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강재.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것 같았다던 사람.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을 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녀가 위험하다는 말에 또 앞뒤없이 강릉까지 단숨에 날아왔습니다.

어쩜 좋아요, 이제 우리 윤선생, 소문 다 났네 다 났어.
호텔방에서 이상한 남정네가 전화를 받더라네~ 어떡하나요~





그래요.
어쨌든 따라는 왔으니, 강릉이 미주혼자전세낸 곳도 아니고 같이 있는다 칩시다.
근데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세미나장까지 따라들어와요?
누구보다 열심히 따라적으면서 말이지요.
거 참, 신경쓰이네.
이번 세미나는 영 망칠 것 같습니다 미주씨.





나이트클럽에서 엉덩이가 어디 붙었는지 확인해주시던 선배님을 마주쳤습니다.
아, 밥을 먹자구요?
그런데 일행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미주씨하고 무지 친한 조폭이신데.
사실 뭐 그날도 출소기념파티중이셨다네요 글쎄.
술마시고 여자 더듬는 어떤 놈 패주고 들어갔다 나오시던 참이래요.
아, 그 놈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글쎄요, 생사가 불명하대나 어떻대나;;;





음..그러니까 이 시추에이션은요.. 그니까...
거 참, 눈 똑바로 쳐다보고 뭐하는 겁니까? 사람 이상하게...
상황 끝났으면 그 손 내리고, 좀 떨어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뭐 그렇다고 또 뭐라는 건 아니고, 좀 이상하다는 거지.
지금 싸우시는 거.. 맞지요?





미주 놀랄까봐, 예약된 방을 바꾸어버렸지요.
꼼짝마세요. 강재씨.
그냥 이대로 서울로 올라가면요, 지금보다 더 혼날지 몰라요.
아 글쎄, 그냥 가면 안된다니까요.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가보다.
그래서 이 사람이 나를 위해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와야했었나보다.
알면 안되겠지... 궁금해해서도 안되겠지...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자꾸만 어두운 상상을 불러옵니다.
모르는 이들의 결혼식 하객으로 묻혀 숨어있는 동안, 미주는 숨이 막힙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와 있네요.
아무렇지 않은 척, 그저 어디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온 무심하고 편안한 얼굴로.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보고 싶었지요.
세상 끝까지, 그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 도망의 종착역은 또 늘 그 사람이 기다리는 곳이었다는 걸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는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세상 누가 돌팔매질을 하더라도, 이제 더는 도망칠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거든요.
살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걸 이제 알았거든요.
그렇게 아름답고 수줍은 고백을 더는 뿌리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이렇게 힘들게 걸어와서 드디어 만난 사랑이라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방도 깨끗하고, 이부자리도 깨끗하고,
그래도 영 잠을 이룰 것 같지 않습니다.
잠이.. 안 오겠지요? ^^;;





세상의 모든 파도소리가 이 창 아래서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며 밀려왔다 밀려가던 밤.
작은 이 어깨에, 세상의 모든 별빛이 기대어 있다고 생각했던 밤.
오랜 아픔의 시간이 왔을 때, 그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며 눈물로 그리워하던 그 밤.
영원히 이대로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함께 어깨를 기대고 잠들었던 밤.
두 사람이 처음 눈을 뜨고 바라보던 새벽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왔을까요.
서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네요.





잊지 말아요.
그 사람이 처음 내밀었던 이 손의 말들을.
잊지 말아요.
마주 잡아오던 이 뜨겁고 순결하던 손의 속삭임을.

이제는 장갑이 필요 없을 거예요.
미주가 손 시릴 틈을 주지 않고, 언제나 강재가 따뜻하게 잡아줄테니까요.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의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잊지 말아요.
당신들의 이 마음을, 이 사랑을.
서로의 마음에 물들인 이 사랑의 힘을 믿어줘요.
오래 힘들고 추운 날이 오더라도, 이 날 이 곳에서 햇살처럼 주고받던
이 약속의 말들을 부디 잊지 말아요.
이 마음을 잊지 말아요.



* 부문, 도종환 <종이배 사랑> 중,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