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10.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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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찢은 상처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고개를 돌려야 했던 사람들.
최선이라고 믿은 거짓으로, 남은 날을 눈감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백 번 같은 한 번의 사랑으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게 흔들리고 있는 미주의 슬픔을
강재는 그저 망연히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신도에 가서 인사도 드리고... 이제 저쪽은 그렇게 제 갈길로 잘 가는 듯 한데, 미주의 얼굴은 한없는 슬픔에 차 있습니다.
웃는 듯, 우는 듯 취해 흔들리는 미주의 눈빛은 금새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데,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 답답하고 고통스럽네요.


잊어버리면 안되지요.
기억해야지요. 한때나마 소중했던 것들은 다 추억인데...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그건 정말... 그 시간을 백 번을 지나간다 해도 똑같이 한 번 처럼 다시 뜨겁게 타오를 추억인데.


휘청 무너지는 미주를, 생각할 틈도 없이 붙잡아버렸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누구는 술을 마시고 울 수라도 있지요.
왜 나를 밀어내느냐고, 왜 그 소중한 기억들을 지우라고 하는 거냐고 울며 항변이라도 할 수 있지요.
어떤 사람은 그런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인생을, 백 번 아닌 천 번을 살아도 다시 만나면 안되는 사람이기에, 가슴에 파고들어 제 방을 만들어버린 그 추억에게 왜 거기에 자리해버렸느냐고 울며 서러워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몸은 마음보다 먼저 나가버린 걸까요.
눈길도 주면 안되는 사람을, 휘청이는 그 사람을 어쩌자고 잡아버린 걸까요.





이렇게 몸을 못 가누면서도 더 마시고 가겠답니다.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요.
무엇엔간지 모를 노여움과 자괴, 슬픔, 고통...
한 사람은 슬픔에, 한 사람은 분노로 가슴이 타는 밤입니다.






들어서는 안 될 말.
처음부터 알았으면서도, 그래도 정말 듣고 싶지는 않았을 말.


죽지 못한다면, 그래서 지울 수 없다면 이렇게라도 잘라내야 했던 마음.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 어디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쏟아내고 말았던 말.
자신의 것인 것 같은데, 정작 스스로는 허깨비가 되어버린 듯, 굳어버린 귀로 듣고 있던 말...







밤새 잠을 못 자고 퉁퉁 부어서, 거기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달고, 로비에서 마주쳤습니다.
왕진을 갔다 왔냐며, 어색한 농담을 던져도, 굳어있던 그녀, 또박또박 내뱉습니다.

부탁이 있는데요. 나한테 말 걸지 말아주실래요?

네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있는대로 무너진 꼴을 보이고, 청혼을 목도하고, 그리고 유진의 매운 말을 들어야 했던 미주씨.
몸서리치게 싫고 원망스럽겠지요.
바보같은 이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모진 꼴을 보이고도 그녀가 정말 돌아설까봐, 그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훌쩍 떠나버릴까봐 무섭나 봅니다.






장갑을 빌려주겠다구요...
어쩌나요. 이젠 너무 늦었는데요.
남이 끼던 장갑이었지요. 지금도 너무 늦은 걸요.
지금 와서 잡아주겠다구요.
어쩌라구요 강재씨.
유진씨는 어쩌고 지금에 와서 어쩌라구요.
손, 안됩니다.
그 손 내밀 자격, 없는 거 모르시나요.
마음... 들키면 안되지요. 왜 모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