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신호등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나희덕 <푸른 밤>
안되었겠지 강재...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제 별을 찾아가는 그 길을 걷고 있는데,
그 사랑이 치욕이라고, 죄악이라고, 아무리 무서운 돌을 맞는다 해도
네 머리 위에서 빛나는 그 별들이
그 사랑의 빛으로 이렇게 쏟아져내리는 밤이 되어버린 지경에야.
안되었겠지.
사랑은 아니라고, 이 마음이 사랑은 아니라고
너도 수만번은 돌이질했을 그 마음이,
차가워진 너의 손에 가만히 따라와 포개지는 그 사람의 손의 기억으로
너는 안되었겠지. 지울 수가 없었겠지.
사랑은 그런 것이다.
이미 제 몫을 주장하는 그 목소리를, 누가 뭐라해도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치욕이든 사랑이든,
사랑이든 치욕이든,
이미 눈 멀고 마음을 줘버린 다음에야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너도, 그 사람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은.
가지 말라고, 더는 진입할 수가 없다고
누가 막아서서 팔을 벌려도
이미 시작한 마음은 뒤로 가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도무지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