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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뭉크
소금눈물
2011. 11. 3. 21:12
어느해였던가.
나는 한달 가까이를 병실에서 맞고 있었다.
지리하고 졸리운 봄이었다.
창밖은 눈부시게 노란 개나리 천지인데 사는게 견딜수 없이 지겨운 표정으로 하루하루 달력을 뜯어나갔다.
서둘러 입원한 덕에 내 병실은 원래의 내과병동이 아닌 정형외과 병동이었는데 대부분이 교통사고 환자들이라 몸을 가누기도 힘든 그 병실에서, 유일하게 사지가 멀쩡한, 그야말로 나이롱 환자같은 나는 새벽에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병원 뒤뜰을 서성이거나 죽은이들의 이름이 한정없이 등장하는 책을 읽어대곤 했다.
끝도 없을 것 같은 지루한 봄날이었다.
소녀는 뭉크의 누이이다. 여인네는 이모 카렌이다.
어려서 죽은 이 소녀는 뭉크의 삶 내내 검은 휘장을 그의 등 뒤에 들이치게 하여 죽음의 냄새를 끊임없이 뿌렸다.
창 밖은 눈부신 봄, 열어놓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커튼을 살랑이고 창틀에 얹혀진 화분을 생명으로 가득하게 한다.
그러나 봄햇살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겨운 소녀는 고개를 돌리고, 다만 파리한 소녀를 바라볼 뿐 어찌할 힘도 없는 여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방안에 햇살이 흘러넘치는데도 흔들리는 커튼보다, 고개를 돌린 소녀의 작은 얼굴에 시선이 먼저 닿는다.
죽음이 멀지 않은 가엾은 어린 소녀.
봄은, 잔인하고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