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라고 불리는 사람
병원을 그만두었다는 말을 뒤늦게 들은 회장 사모님이 저녁을 사주셨어요.
성격 화통하고 돈도 많은 이 사모님이 날 보고 며느리가 되어달랍니다.
세연씨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어머님을 닮았나봅니다.
사실 뭐 생각하면 과분한 자리지요.
깡패만 아니면 사윗감으로 아무 상관없다는 아버지지만, 깡패도 아니고 재벌회장님 아들이라니, 더구나 성격도 좋고 생긴 것도 훤칠하니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그런데 나는...어쩐지 어렵고 부담스럽네요.
양귀비꽃같이 화려한 미모에 시원시원한 성격.
다른 돈 많은 사모님처럼 잘난 척 하지 않고 참 좋은 분인데 말이지요.
어라?
이 사람을 또 여기서 만나네요.
뭐라구요?
사모님 기사라구요?
저 사람은 .... 그럼 사모님은?!
먼저 아는 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도 굳이 구면이라고 말하지 않는군요.
어쩐지 밝히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불편한 외면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요.
- 바쁜데 불렀니?
- 아닙니다.
- 할 얘기도 있고, 겸사겸사해서 불렀어.
- 그래, 네가 아는 게 뭐가 있니. 그렇게 아는 게 없어서 세상을 어떻게 사니
주주총회에 너도 가니?
-네..
그 사람의 무거운 목소리.
- 요즘은 회사에도 똥개가 필요하대냐?
- .....
듣지 말아야할 대화입니다.
이 자리에 애초에 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사람이 어느 누군가의, 더구나 여자의 운전기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네요.
굳은 뒷모습..
정말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었을텐데.
가당찮게도 저 사람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길이 비껴가며 부딪다가 멈칫 합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어렵네요.
회장님 곁에서 나가라고, 나이트클럽 두어 개 떠맡아서 나가떨어지라고...
그런 주제의 양아치가 너라고.
사모님이 이렇게 무섭고 잔인한 분인지 이전에는 몰랐습니다.
화통한 것이 아니라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둘이 되고서도 말을 잇기가 어렵습니다.
보지 말아야할 모습을 본 나, 보이고 싶지 않았을 모습을 보이고 만 두목.
가슴 깊은 곳에 상처가 많은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모습이 지금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는 걸 몰랐습니다.
이따끔 보이던 슬픈 눈빛이 과거의 그림자인 줄만 알았지 지금의 뒷모습이기도 하다는 걸요.
하기야 생각하면 그는 조직폭력배 아니었던가요.
그 세계의 질서대로 그의 자리가 있는 것이었겠지요.
아는 체 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내게도 당신을 아는 척 해서 좋을 게 뭐가 있었겠냐고 매운 답을 했습니다.
장래 시어머니가 될 분일지도 모르는데 - 하고 쓸데없는 군말까지 했네요.
이건 정말 할 말이 아니었는데.
내가 사모님의 며느리가 되건 말건 이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너 말고 다른 사람이 내게 있을 수 있다고 아마도 마음 속에서 그에게 하고 싶었나봅니다.
분노와 자괴감에 빠져있는 이 사람에게 지금 이런 말들이 무슨 의미일까요..
바보, 바보 윤미주.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