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완결소설- 늦은 비
18.
소금눈물
2011. 11. 10. 14:23
지리한 싸움이 될 터였다.
영의 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만일 폐렴이 오래 끈다면....그리고 흐트러진 당이 다른 걸 끌고 온다면....
나는 흘낏 검사 결과지를 들여다 보았다. 아직 신장은 괜찮아 보였다.
"입원....하시는게 좋겠습니다. 두고 보지요"
"그러지요"
가슴 밑바닥에서 겨우 끌어올리는 것처럼 힘겹게 창이 대답했다.
폐렴때문이라면,아니, 당뇨때문이라면 젊은 영이 그다지 힘겨워 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이의 장기가 얼마나 제 일을 해 줄지가 문제였다.
창에게 입원수속을 하라고 시키고 돌아서는데, 침대밑에 떨어진 붉은 노트 한 권이 보였다. 영의 가방이 열리면서 떨어진 것 같았다. 분명히 지갑은 아니었다. 대학노트보다 좀 작은 크기의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얼른 주워서 가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누가 볼세라 황급히 돌아보았지만 다행히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구에서 수액을 바꾸어 끼워주던 간호사가 내 표정을 보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나는 얼른 몸을 돌렸다.
영의 숨소리는 많이 편안해져 있었다.
나는 창이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응급실을 나왔다.
가슴이 쉴 새 없이 두방망이질을 하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의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얼른 노트를 내 서랍에다 넣고 자물쇠를 잠가버렸다.
날이 밝자 간밤의 평화를 댓가로 치루겠다는 듯 정신없이 환자가 밀려들었다. 회진을 끝내자마자 응급실에서 호출이 왔고 심장마비를 일으킨 노인을 이승으로 붙잡아 매고나자마자 다시 병실에서 불렀다.
하루종일 뛰어다니다 점심을 걸렀고 그 와중에 영이 입원한 병실 호수만 겨우 확인을 하고 가보지도 못했다.
병동 스테이션에서 담당의만을 확인하는 걸로 족해야 했다. 병훈이었다. 실수를 가끔 하긴 했지만 속이 깊고 성실한 녀석이었다. 하긴, 의사의 실수는 어떤 작은 것이라도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긴 하다. 저녁에 불러서 다시 부탁을 해 놓아야지. 하지만 저녁때까지도 나는 내내 뛰다시피 다녀야 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정신없던 하루가 갔다. 마지막 환자를 보내고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담배 한대만 피우고 식당에 내려가 볼 생각이었다. 그때까지 밥이 남아있으면 요기라도 먼저 하고 병동엘 가 봐야지.
내가 담배를 막 불에 붙였을 때였다. 노크소리가 들리고 대답을 할 틈도 없이 의국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나는 불쾌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보았다.
키가 크고 눈이 깊은 남자였다.
"진료는 끝났는데요"
"죄송합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윗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광주지방법원 강력계 검사 조형가(趙荊軻).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