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10. 14:01

12/23/2003 02:57 pm공개조회수 0 0


청년의 모습이 대문을 벗어날 때까지 나는 조용히, 그가 남긴 어둠 속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창이가....왠일이랴? 선생이 어찌 저이를 아우?"

돌아보니 마을 이장이었다.
마을에 머무는 내내 제일 많이 우리들과 부딪치면서도 말수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눈치로 그때그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만 챙겨주거나 관공서엘 나다니면서 부족한 물품을 얻어오거나 할 뿐 쓸데없는 말을 어울려 섞는 이가 아니었다.

"저 사람의 이름이...창입니까?"
"이름이야 ...백창이오 서 백창(西伯昌)..."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 저 애가 찾아왔단 말이오? 한 철에 하루도 마을에 내려오는 일이 없는 아인데..."

"쌍계사에....사는 가요?"

"거기서 봤소?"

"네"

이장은 대답을 하지 않고 주머니를 뒤졌다. 나는 얼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서 주었다.

"그런 절에서 저런 아이들이 살진 못하지.거긴 이름난 관광지 아니오. 절 뒷산으로 한참 더 들어가면 작은 암자가 있는데 거기 사는 이라오.본절 스님의 조카뻘이 된다든가.내 재종숙모가 그 절의 공양준데 절에 일이 있으면 잠깐잠깐 나를 불러서 잡일을 시키곤 하지. 그런 저런 일로 절을 가끔 드나드는데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소"

"아가씨와 같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아주 미인이던걸요?"

"허허...젊은 선생 눈에도 영이 얼굴이 먼저 들어왔구만...미인이지, 암 미인이야 . 이런 산골에 저런 인물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소. 저 아이가 한참 어렸을때부터 요 근동 사내애들이 아주 정신을 못 차렸다오 "

"예에"

"하지만 창이 앞에서 행여라도 그런 내색을 마오. 동네 왈짜들이 집적거렸다가 치도곤을 당한게 한두번이 아니니. 생긴건 저리 샌님 같아도 영이일만 얽히면 눈에 뵈는 게 없는 아이라오."

"남매....인가 보지요?"

"온 남매는 무슨~ 사연 있는 집안 같던데. 잘은 몰라도 창이 아버지가 서울에서 기침깨나 하고 사는 이라던데. 몇해전에 죽긴했어도 어렸을때부터 자주 들락거려서 알지, 창이 아버지가 차를 끌고 나타나면 저 윗동네 경찰서장부터 오금을 저렸으니...친 동생은 아닐거야. 성이 다른걸. 언제더라....막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인가 그 전인가.. 그 때부터 같이 살았다던 걸...아마 그럴게야. 내가 남의 집안 일을 잘 아나...

재종숙모가 가끔 전한 말이나 듣고 있지.시골에선 왠만하면 남의 집 밥 숫가락 갯수까지 다 안다오. 어찌어찌 사내애 집에 얹혀산 모양인데 몇해전에 창이 아버지가 죽은 후에 영이가 절로 내려오더니 그 다음에 저 아이가 따라오더군."

한꺼번에 빨아들였는지 밭은 기침을 했다.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내 외지인한테 이런 소릴 해도 되나 모르겠소. 속이 깊어 보이는 사람이니 하는 말이오. 뭐 다시 볼 일도 없을 것 같고. 사연이야 어찌 다른 사람이 다 알겠소만....속으로만 오가는 말로는,저 아이가 광주에서 얻은 아이라 합디다. 나이도 얼핏 그렇고."

광주~!! 광주의 아이. 그럼....~!!

"창이 어머니가 저 아일 맡기면서 스님한테 부탁을 한 모양이오. 어찌 인연이 닿아서 광주에서 핏덩일 주웠는데, 그래도 원체 착한 사람들이니 잘 길렀답니다. 암...그러고도 남을 이들이지. 그런데 어째 몇해전에 영이 말이 어찌 생겨서 아버지가 옷을 벗고 충격으로 죽었답니다. 그러니 그 잘난 집안에서 들고 일어난 게지요. 업동이 계집애 하나때문에 집안이 망한다고... 어쩔 수 없이 절에다 맡기고 간 모양이오. 본절 스님하고 창이네 외가하고 사가의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라. 에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