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10. 13:59
"제가..좀 봐도 될까요.....외관 아니지만.."
남자가 돌아보았다. 아직도 경계를 다 푼 얼굴은 아니었지만 잠시 망설이다 몸을 비켜주었다.
여자의 상처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넘어지면서 발목을 좀 삐었을 뿐이었다.
부러진 곳도 없었고 크게 다친 데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산길이 험하니 이대로 쉽게 내려가긴 어려울 것 같았다.
"좀 삔 것 같은데요...발목을 편하게 하고 뜨거운 물로 찜질하세요..내일 쯤엔 괜찮을 겁니다"
청년의 얼굴이 비로소 환하게 풀렸다.
"혼자 내려가긴 어려우실테니....같이 부축이라도....전 괜찮습니다"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그쪽 마을도 아닙니다. 이 아이가 보아둔 새집이 있었는데 간밤 비에 흔들렸을까봐 나왔다가 다친 모양입니다.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잡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미소를 보이며 내게 고개를 끄덕했다. 나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주었다.
"업혀"
청년이 등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몸을 일으켜 청년의 등에 기대었다.
스스럼없고 편안해 보였다. 여자가 등에 얼굴을 묻었다.서늘하게 감긴 눈썹이 말 할 수 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청년은 다시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산길을 내려갔다.
여자의 푸른 셔츠가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씩 흔들리며 멀어지는 동안, 나는 묵묵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숲속은 새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거세게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비로소 들렸다.
누구일까...그들에게선 어쩐지 세상과 벗어난 그런 빛이 감돈다. 쓸쓸하고도 평화로운 어떤 기운. 그렇다고 이런 산골에서 나고 산 사람들이 가지는 소박한 평화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저들은 분명 여기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혼자서 단정을 내렸다.
눈이 닿는 관목숲이 우거진 숲길은 길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은 금새 사라졌다.
나는 어쩐지 손에 잡혔던 고운 꽃을 놓쳤던 것처럼 허우룩한 기분이 들었다. 몹시 허전하고도 이상하게 아팠다.
그러고 보니 저들을 본 게 세번째다. 물론 그들은 오늘 나를 처음 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수 없는 단단한 끈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닮은 얼굴도 아니었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사는 기사 같았고 여자는 남자의 칼 날 아래서 눈을 감고 잠자는 물거품 같았다.
잠시 스친 단상만으로 이런 마음이 가능한 걸까. 나도 모르겠다. 그저 스쳐지날 수 있는, 얼굴이 고왔던 그런 젊은이.그걸로 다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래도 나와 이어지는 어떤 길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세번의 만남으로 벌써 나는...짐작하고 있었는지....그들의 단단하고 아픈 사랑, 그리고 끼어들 수 없기에 결국 쓸쓸하고야 말 내..사랑...
청년이 다시 찾아온 것은 그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