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10. 13:56

12/08/2003 03:41 pm공개조회수 0 6


달빛은 흰 천을 깔아놓은 것처럼 뿌옇게 빛났다.
사방은 고요했다.
이따금 정적을 깨는 찻소리가 요란하게 지나가고....
그리고 다시 세상은 정적에 잠겨들었다.

물소리가 흐르는 곳을 따라 내려갔다. 논밭쪽이었다.
밤공기는 사정없이 매웠다.
일찍 마신 술을 깨려고 냇물에 손이라도 담가볼 생각이었다.

마른 물이 어디서쯤 남아있던가.
냇가쪽으로 막 발을 옮길 때였다.

나즈막한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구부러진 매화나무 가지 뒤로 몸을 가렸다.

"언젠가는 만나지겠지. 만나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만난다니까..."
"...그럴까..."

그들이었다.

부드러운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다시 몇마디 이어지는 듯 했다.
여자는 말이 없었다.

냇가에 앉아서 물을 들여다 보는 듯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남자는 안타까운 듯 몇마디 더 던졌다.
조용한 이야기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교교한 달빛이 사정없이 그들 어깨로 부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여자의 어깨로 출렁, 머리채가 흘렀고 여자를 돌아보는 남자의 턱선이 단단했다.

몇살이나 되었을까.
스무살 남짓한 여자와 서른이 안되었을 것 같은 청년이었다.

그때...바람이 화르르 일었다.

내가 서 있던 매화나무가 조금 흔들렸다.
그러면서 줄을 지어 꽃방망이를 만들었던 가지가 몸을 열어 꽃을 뿌려버리듯 순간.. 희디 흰 꽃잎이 비처럼 그들 어깨 위로 날아내렸다.

꽃 비...

부신 달빛 아래로 흐르는 꽃비의 물결....

몇은 여자의 이맛전으로 떨어졌고 또 몇 잎은 남자의 어깨로 흘러갔다.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이제 침묵이었다.

시간이 멈추어 진듯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숨막힐 것 같은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나무 뒤에서 발을 떼지도 못하고 나는 홀린 듯 그들을 바라보고....
날리던 꽃잎 몇이 내 얼굴을 스쳐갔다.

그들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날이 선듯 보이던 여자의 목소리는 차츰 낮아졌고
여자를 달래던 청년의 말은 더 없어졌다.

그림 속의 사람들처럼 그들은

이따금 매화꽃이 날리는 달빛 아래서 앉아 있었고
물소리는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그들 곁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그만 눈을 감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내가 들여다보지 말아야할 어떤 슬픈 꽃의 안쪽을 무심결에 보고 만 것 같았다.

보지 말 것을....그저 스쳐 지나가야 했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