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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금눈물
2011. 11. 9. 17:00
비가 내리는 토요일, 백화점에 갔다.
내가 자주 들르는 곳은 백화점 지하의 음반 코너다.
음반코너는 전자제품 코너 안 쪽 비상계단이 있는 곳이다.
비상계단을 통해 1층 잡화코너로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가방을 맨 아이들로 그곳은 언제나 혼잡하다.
아이들은 천천히 걷는 법이 없다. 발바닥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언제나 날아오를 듯이 뛰어다닌다.
나는 천천히 테이프가 벽면 가득 꽂혀 있는 쪽으로 간다.
베에토벤의 템페스트, 모짜르트 레퀴엠, 건너뛰어 바하의 현악기들, 다시 그 아래로 차이코프스키...
흘낏 계산대 쪽을 바라본다.
머리를 묶은 어린 점원은 몰려든 아이들이 저마다 내미는 테이프를 가려 계산을 하고 포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실반지를 낀 손가락이 가늘다.
그 손으로 바쁘게 포장지를 썩썩 자르고 스카치 테이프를 붙일 때마다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던 아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든다.
나는 옷깃을 여미고 계단 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포장을 하던 점원이 언뜻 돌아보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턱을 조금 내밀며 똑바로 바라본다.
점원의 눈은 투명하고 차갑다.
한쪽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점원이 천천히 미소를 짓는다.
벽시계의 추가 똑딱똑딱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딱딱하고 굳은 미소다.
등허리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돌아선다.
발자국을 떼고 계단을 다 올라설 때까지 점원은 나를 부르지 않는다.
계단을 다 올라오고 백화점 회전문을 밀고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다.
얼굴에 닿는 저녁바람이 선뜻했다.
비냄새가 묻은 바람이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예보를 하던 생각이 났다.
그날 밤에는 비바람이 몹시 불었다.
천정이 낮은 지붕에서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금새 주위가 새까맣게 어두워졌다.
커튼을 달지 않은 조그만 유리창이 마구 흔들렸다.
상을 치우고 들어온 언니가 일찌감치 이부자리를 폈다.
언니가 카세트를 내려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릴 때 나는 주머니를 뒤적여 테이프를 꺼냈다.
"시내 나갔었니?"
언니는 겉에 싼 비닐을 풀며 무심히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언니가 불을 껐다.
빗소리는 이제 양철통을 두드리는 것처럼 소란해졌다.
창밖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통해 창문히 희부윰하다.
사선으로 내려긋는 빗줄기.
나는 창문을 보며 누웠다.
빗줄기는 항상 똑같은 방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화살을 한꺼번에 내려꽂는 것처럼 쏟아지다가도 빛줄기 앞에서는 이리저리 다른 모양으로 흔들렸다.
언니가 틀어놓은 테이프가 돌아갔다.
곡 이름은 나도 몰랐다.
눅눅하고 울적한 밤허리를 낮은 피아노 소리가 부드럽게 흘렀다.
창밖으로 취한 행인이 혀끝이 자꾸 말리는 노래를 부르고 지나갔다.
비칠거리는지 물이 고인 웅덩이를 쿨적쿨적 차는 소리가 났다.
나는 눈을 감고 취객이 부르던 노랫자락을 따라갔다.
화앙성 옛 터에 바암이 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