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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회

소금눈물 2011. 11. 9. 16:19



다음날 아침 김경일 씨는 식당에 내려오지 않았다.
원무과에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오후가 넘어가자 열이 받은 원무과장의 채근을 듣고서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김양이 옥탑 방에 찾아갔을 때는 김경일 씨는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김양은 입도 떼지 못하고 내려왔다.

"니꾸사꾸, 아니 김 계장님이 쪼매 이상합니더"

제 딴에도 어딘지 숙연한 김경일 씨의 행색이 불안해서 올리는 말이었는데,

"와. 그놈아가 우짜고 있는데?"

"우짜고 있는 기 아이라, 아무것도 안 합니더"

"그기 뭐 이상하노"

"우애든동 쪼매 이상해예. 디게 조용합니더"

원무과장은 간 밤이 처 묵은 술이 아직 안 깨었나 싶어 입을 닫아 버렸다. 더 볼 것도 없이 정신이 들면 원장에게 말해서 잡도리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김경일 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김양이 되어버렸다.

다음날도 내려오지 않자 화가 난 김 과장이 올라 가 보았을 때 김경일 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벽이 기대어 있다가 그대로 허물어진 듯 눈감은 김경일 씨 손에는 여자 양말 한 짝이 들려 있었다.

좌우명처럼 노래하던 야쿠자의 정신과는 별로 상관없는 최후였다.
직접적인 사인(死因)은 말기 간경화였다.
하긴 어찌된 사연이든 세상이 몰라주는 애통함을 술로 달랜 것이었고 그 덕분으로 남들보다 좀 서둘러 가 버렸으니 범상한 최후가 아니라면 아닐 수 있었다.

오라는 데 없고 보낼 데 없어 떠맡은 꼴이었던 당숙도 일을 당하고 보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충 그러모아도 쓸쓸할 집안은 아니었건만 부모가 빠지고 이룬 가정이 없고 보니 문상객도 없었다.
하긴 그 모양이 된 데는 워낙 인품이 출중했던 망자 탓이기도 했다.

온천동 존마이 형님이 졸하셨다는 말을 듣고 그 수하의 동생들 여남은 명이 찾아와 서툰 곡소리를 몇 번 지르다 병원 시끄럽다고 쫓겨난 후로는 아예 드나드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번듯한 집안 선산까지 가지도 못하고 초라한 영구차에 실려 화장장으로 떠났다.
김 과장과 방사선과 실장, 그리고 경비 박씨가 차를 따라갔다.

옥탑방을 치우라는 원장의 지시에 투덜거리던 식당 아줌마가 올라가 보니 경첩이 어긋난 문짝이 바람에 덜렁거리고 있었다.
시신이 나간 뒤로 돌아 본 사람이 없어 방안 꼴은 그대로였다.
혀를 차며 비닐봉지에 부서진 살림들을 쓸어 담던 아줌마에게 술에 얼룩진 종이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개발괴발 내 갈긴 필체가 유치원에 갓 들어간 손자녀석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한 형상이었다.
아줌마는 이마를 찡그리며 잠깐 들여다 보다 이윽고 깨어진 사기그릇 조각들과 함께 쓰레기 봉투 속으로 던져 버렸다.


- 아내 숙아
너를 보고 밤새 잠을 이루지 안했다. 이쁘던 너이 얼굴이 만이도 상햇다. 너가 나갈 떼 옷을 다 가지고 나가지 안햇는데 너이 옵바가 가져가서 마음이 좀 나앗다.
그런대 오늘 보니 너가 두고 간 양말이 한나 그대로 잇엇다. 한나만 남은 양말을 너느 어떳게 신고 잇니. 역은 바람이 만이 불텐데 손은 춥지 안게지만 발은 어덧게 하니.
숙아 발이 시리면 어덧게 하니. 한나만 남은 양말이 나한태 잇는데

김경일 씨가 생애 처음으로 써 보고 부치지 못했던 편지는 그러나 당자에게 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사라졌다.

그날 온천장에는 저녁 내내 찬바람이 골목을 누비며 헤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