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완결소설- 아이러브스쿨
마지막 회.
소금눈물
2011. 11. 9. 16:02
"너 e리빙이라고 들어봤니?"
"아니"
이번에는 아예 한심하다는 듯 허 참 하더니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지금 이게 얼마나 화제인데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말야?
얼마 전에 바이오풀이라고 한참 열풍 일었었잖아.
그게 다단계로 좀 말썽이 난 일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기존해 있던 주방용 세제류 중에선 보기 힘든 아주 탁월한 제품이었어.
우리 제품은 다단계는 절대 아니야.
생산자에서부터 중간유통을 줄이고 우리 마켓팅 홈을 이용하면 바로 소비자에게 연결이 되거든.
쇼핑 호스트인 우리는 구입액의 5%정도를 커미션으로 가지고 품목 당 10%에서 15%는 소비자도 싸게 구입할 수가 있으니까 아무도 손해는 보지 않아.
생산자도 필요없는 광고나 시장을 깔지 않고 내 놓으니까 원가가 절감되고.
100% 이윤만 서로에게 남는 거지.
너도 한 번 생각해 봐라.
나는 요즘 우리 아이 분유부터 기저귀, 와이프 화장품 같은 거 밖에서 절대 안 산다.
싸게 사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 데 그런데 돈 갖다 줄 일 있으면 차라리 모아서 노숙자들한테 밥이나 사 먹으라고 주는 게 훨씬 낫지. 안 그래?"
인섭의 얼굴은 노동운동을 이야기할 때보다 훨씬 밝고 활기차 있었다.
우주의 진리는 멀었고 생활은 가까이서 그의 삶을 속이고 있었다.
자신을 보는 내 시선도 느끼지 못하고 인섭은 다시 가방을 뒤적여 또 다른 목록을 보여주며 열심히 e리빙의 상품을 보여주었다.
나는 인섭에게서 티백 커피 두 봉지와 세탁기 볼 한 봉지를 샀다.
e리빙 로고가 찍힌 봉투에 주섬주섬 챙겨 넣어준 인섭이 몸을 일으켰다.
"가게?"
"응. 할머니도 좀 정신이 돌아오시고 너도 만났고.
뭐 사실 언제 가시든 당신 수명은 다 하신 거니까 서운할 것도 없고 잡아서 안 갈 길도 아니지만 어떻게 엄동설한은 피해야지.
야 그래도 너를 만나니까 정말 반갑다.
초등학교 동창이 좋긴 좋구나. 이렇게 세월이 한참 흘렀어도 금방 얘기가 통하고"
인섭과 나는 커피샵을 나왔다.
문을 밀고 나오자마자 거센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완전히 눈보라였다.
인섭이 멈칫하더니 씨익 웃었다.
"차 안 가져왔니?"
"응. 가까워 집이"
나는 걸어 갈 거리를 생각하고 까마득해졌다.
속으로 태워다 달라고 할까 어쩔까 망설이는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나 먼저 가 봐야겠다.
날씨가 이래서 운전도 조심해야겠네. 어유 언제 서울에 도착하니"
나는 하는 수 없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걱정 마. 나는 잠깐이야. 너나 운전 조심해라"
인섭은 서둘러 주차해 두었던 차의 시동을 걸고 떠났다.
부르릉거리며 떠난 차의 매연이 얼굴에 확 끼쳤다.
초등학교 동창은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멀거니 사라진 차를 바라보다 어깨를 한 번 들썩하고는 돌아섰다.
바람이 칼날처럼 스쳐갔다.
그새 쌓인 눈으로 구두가 다 덮였다.
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e리빙 봉지를 팔 안쪽에 끼고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종종거리다 보니 자칫 고꾸라질 것 같았다.
비칠비칠 얼지 않은 맨 눈 위를 더듬거리며 걷는데 주머니에서 밀양아리랑 리듬이 울려퍼졌다.
전화벨이었다.
엉거주춤 걸음을 멈추고 호주머니를 뒤적여 전화기를 꺼내는 순간 발끝이 삐끗하다 싶더니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바람에 손에서 미끌어진 전화기가 다시 나동그라진 얼굴을 때리면서 떨어졌다.
창피한 줄도 모르게 사정없이 부딪친 엉덩이가 비명도 삼킬 만큼 아팠다.
"여보세요. 나 정교순데 이 인경씨 전화 맞지요?"
뚜껑이 열린 전화기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