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눈물 2011. 11. 9. 15:56

탁상달력을 보니 약속은 없지만 이번 주까지는 내가 밥줄을 매고 있는 해운회사 사보의 기사 마감이다. 하청에 또 재하청처럼 나 같은 얼치기 프리랜서 작가에게 쥐꼬리만한 금액이나마 고정적으로 돈줄이 되어주는 터라 손도 안 댄 기사가 맘에 걸리긴 했다.

내가 맡은 꼭지는 그때그때 유행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전국의 소문난 맛집 순례였다가 클래식 음악 꼭지로 넘어갔다가 요즘처럼 영화열기가 한풀 꺾이고 난데없이 미술품 관람이 호사취미로 입에 오르내리는 때는 되는대로 명화 감상기로 넘어가기도 했다.
몇 년 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지방지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다니던 직장을 호기롭게 때려치우고 알량한 전업작가가 되었지만 중뿔난 인사를 뿌리고 다닌 처음 한 달만 신이 났지 곧 밥벌이가 먼저 목을 조였다.

그야말로 떨어지는 건 잠깐이었다.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도 한 두 번이지 그 작가라는 것이 밥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짐작했지만 이 지경까지 이르리라고는 도무지 가늠을 못 했던 가족들에게 구박덩이대접을 받는 것에도 벌써 이골이 나 버렸다.

하릴없이 파지만 날리는 내 신세가 딱도 하고 차츰 영양가 없는 사보기자생활에 진력이 나던 선배가 자기가 맡은 회사 사보의 한 두 꼭지를 내게 넘겨주었다. 물론 내 이름이 제대로 실리는 적도 드물었고 어쩌다 어줍잖은 '프리랜서기자 ' 딱지를 달고 가뭄에 콩 나듯 이름이 올라가긴 했지만 아무려나 내게는 관심밖이었다.

그보다는 알량한 고료가 좀 더 두터운 봉투로 떨어지기를 바래는 것이 나았다.
그러다 보니 기사의 질은 뒷전이고 기사고 뭐고 할 것 없이 어차피 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제대로 고증도 되지 않아 램브란트의 그림이 루벤스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훔친 맛집 기사는 전화번호가 경상도 번호가 전라도에 올라있기도 했다.

사실보도가 생명인 '기자'로서의 책임감은 형편없었지만 그런데도 별 말썽이 없는 것을 보면 사보에 별로 호응이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회사측에서 구조조정 말이 나올 때마다 홍보실 사보팀이 맨 먼저 입질에 오르내리는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