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섭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대전에 내려와 있어. 내일 오전에 서울로 올라 갈 거야 이따 저녁에 잠깐 얼굴이라도 보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벽에 붙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말라 터진 얼굴이 꺼칠하고 추레하기까지 하다.
오늘따라 머리칼도 더 부스스하고 입고 있던 옷도 마음에 안 든다.
이십 년만에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의 전화에 설레는 것도 아니지만 꾀죄죄한 모양새가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오전에 건 전화로 좀 만나자는 걸 영 내키지 않아서 다음에나 보지 했었는데 다시 전화까지 하다니 영 기분이 개운찮았다.
"잠깐 차나 한 잔 해"
내가 말을 끊자 인섭이 다시 재촉했다.
"그럼 그럴까"
딱히 거절할 핑계도 없고 핑계를 만든다는 것도 우스워져 심상하게 대답하고 끊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동창이 차나 한 잔 하자는데 굳이 꺼릴 것도 없었다.
두어 달 전에 인터넷 동창찾기 사이트에 발자국을 남겼다.
별 생각 없이 이름을 올렸는데 잊을만 하면 가끔씩 동창이라고 전화가 왔다.
그다지 뛰어난 우등생도 아니었고 기억되게 이름을 날리던 아이도 아니어서 동창들이 기억하는 내 이미지도 제 각각이었다.
" 너 수학시간에 졸다가 들켜서 남자반 복도까지 도시락 이고 행진했던 애지"
이렇게 물어보는 축은 그나마 추억이라고 귀여움 떠는 축이었고
"얼굴에 주근깨 좀 많고 빨간 폴라 열심히 입고 다녔었잖아 너"
주근깨라고는 얼굴에 붙여본 기억이 없는데도 저 혼자 박박 우기다 갸우뚱하며 끊기도 하고 혹시 노후에 대해 생각 해 본 적 없느냐며 새로 나온 보험 상품을 한 시간 내내 설명하는 애(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반 친구였다)도 있었다.
그런 연락들이 한때의 열풍처럼 우수수 지나가더니 그나마 뜸했는데 며칠 전 인섭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인섭이는 한 학년에 두 반뿐인 작은 시골학교에서 줄곧 반장을 도맡아 하던 아이였다.
장터에서 부흥상회를 하던 아버지가 육성회장이어서 학교 행사 때는 얼굴이 붉은 인섭이 아버지가 선생님들과 단상에 앉아있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 덕인 것도 같고 또 날마다는 아니어도 자주 일등을 하던 아이라 거의 육 년여를 내내 반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 속에 초등학교 반장은 의례 김 인섭이었고 반장은 당연히 그 애처럼 조용하고 순한 모범생이 하는 걸로 새겨졌다.
그렇다 치고 나는 다른 친구들 기억에도 도무지 특별할 것이 없이 평범하고 조용하게 큰 아이였는데 거듭 재촉하는 품이 이 애가 혹시 나를 어렸을 때 각별하게 생각했었나 싶어 잠깐 설레다가도 까닭 없이 불안해지기도 했다.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였다.
만나서 미풍양속을 저해할 짓을 할만한 푼수도 못 되는 주제에 남들의 눈과 입이 먼저 무서워지는 소심함 때문이었다.
인섭이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면 참으로 어이없을 노릇이었지만 말이다.
소금눈물
2011. 11. 9.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