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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세째 날 - 룰로오스 초기 유적지1 - 롤레이사원
소금눈물
2011. 11. 8. 15:35

간이 주유소라고 해야 하나.
페트병에 기름을 담아서 길 가에서 팔고 있다. 질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싸서 많이들 이용한다. 물론 새 자동차, 새 오토바이는 이 기름을 쓰지 않는다고.

초기유적지 룰루오스로 들어왔다.
크메르 초기 첫 수도였던 룰루오스에 야소바르만1세가 세운 사원이다.
원래는 수상사원이었다는데 호수가 바짝 말라붙어 지금은 옛모습을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탑의 상층부는 허물어져버렸지만

용케남은 여신상의 자태가 초기라고는 해도 이후에 전개되는 크메르문명의 놀라운 솜씨를 생각하게 한다.

산스크리트어비문. 문자가 그림처럼 몹시 아름답다.
훌륭한 소금눈물,.. 모 그렇게 써 있지 않을까 -_-;

융성한 사원은 파괴되어 남은 것은 탑 네 기 뿐.
어딘지 좀 둔탁한 형태다.

링감은 여기서도 보인다.
파괴된, 호수로 들어가던 수로의 흔적.

사원 옆으로 학교가 있나보다.
아이들이 한글로 쓴 종이를 나누어준다. 한국에서 자원봉사단원이 들어가서 가르쳐주고 있나보다.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
무너져 폐허가 된 유적 옆에서 허름한 교사를 짓고 아이들은 다시 미래를 꿈꾼다.

학교 옆의 새 불교사원. 현대식 불교사원을 처음 보았는데 학교와 몹시 비교되어보였다.

캄보디아의 사원은 어떨까 하고 살짝 들여다보았다.
단청이나 불상이 동북아와 아주 다르다. 스님인지, 관리원인지 모르겠는데 왼쪽 사진 잘린 쪽에 해먹을 달고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승복을 입지는 않았다.


단청을 생각하다 이렇게 컬러풀한 장식을 보니 신기해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불경스런 말이지만 그림이 디즈니만화책같은 분위기가 든다.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문자해득률이 떨어지던 때에는 성화가 경전을 대신해서 민중들에게 보여지기 때문에 그림이 단순하고 그 뜻을 짐작하기 쉽게 그려진다.
세련미는 좀 떨어져보이지만, 가능한 가장 화려한 색깔들로 치장한 불화를 보면서 이 쪽의 문화가 그런가보다 짐작을 한다.

싱하도 온전하지 않구나.
그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키고 선 성수들.


부모의 덕을 기리는 사원이라그런지 앞 쪽은 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남자 조상, 뒤 쪽은 어머니, 할머니 등의 여자조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야말로 기단조차 허물어진 사원의 흔적.
숲속에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보니 남의 나라 문화재라 하더라도 가슴이 아팠다.

탑에 달라붙어 자라는 풀. 아무도 관리하지 않고 여력도 되지 않는다.
이파리가 하트모양이라 예뻤다.

어휴...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시바신을 모시는 소 난디.
파괴의 칼날을 역시 피해갈 수는 없었지만 섬세한 발굽의 형태를 보여준다.

탑신에 자리잡은 잡초들을 보니 복원은 꿈도 못 꾸지만 그나마 이 유적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캄보디아 유적관리의 전형...

사원 앞에서 룰루오스 유적군과 씨엠립 유명사원들의 모형이 있는데 사실 솜씨는 썩 좋지 못하다.
석회암 재질이 아닐까 싶은데 매끄럽지도 않고 조악해보인다.
그래도 한 번에 씨엠립 크메르유적의 정리가 될 것 같아 돌아보았다.
여긴 앙코르왓 같군.

쁘레야코 사원.

아마도 복원이 되면 롤레이는 이런 모습이 되려나보다.
보이는 것은 너무 허물어져 탑의 원형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바콩사원.

사실 룰루오스 유적지는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엔 그게 그것 같다.
꼼꼼히 돌아본 것도 아니고 한나절만에 후다닥 돌다보니 더 그렇겠지만 파손이 워낙 심하고 건축의 형태는 어슷비슷하다보니 나중에 돌아와 사진만 갖고는 어디가 어디였는지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수많은 전란에 불타고 파괴되었지만 끊임없이 중건하고 보살폈던 우리 조상들이 너무나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물론 우리는 작은 반도이니 어디로 버리고 갈 땅도 없이 그저 끌어안고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으니 그랬겠지만,조상의 유산을 돌보고 그 정신을 간직하려 애쓴 마음은 정말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