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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역사의 발자국 헤아리기

소금눈물 2011. 11. 7. 21:55

01/26/2008 08:5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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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이름이 반드시 그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공화당이 실속 있는 공화주의를 실현해 오지 않았듯, 지금의 영국 노동당도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1979년 12월의 군사반란과 이듬해 5월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밑절미 삼아 만들어진 정당이 민주정의당이라는 이름을 내건 것은 우리 현대사의 한 희극적 에피소드를 넘어서 한국어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할 만 했다.

p.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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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것은 자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기록하는 독일 교과서의 솔직함이다. 독일의 한 1994년판 김나지움 교과서는 반제회의와 그 이후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42년 1월에 '최종해결책'이 반제회의에서 결의됐다. 피점령국의 게토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동부 유럽의 절멸 수용소로 이송돼 결국 가스실로 내몰렸다. 나치스 친위대의 한 비밀 보고에 따르면, 1944년까지 유대인 400만명이 살해됐고, 200백만명이 다른 방식으로 제거됐다."
1998년판의 또 다른 김나지움 교과서는 독일 일반 시민들의 책임까지 묻는다.
"범죄는 국가가 조직하고 명령했지만, 그 집행에 광신적 나치스만 가담한 것은 아니었다. 수십만 시민이 이 과정에 연루됐고, 수백만 시민이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확하게 후세가 기억하길 바랬다. 그들은 과거에 끔찍했지만 그들의 미래는 존경받을 만했다.

p. 30

"외적인 강제가 개인의 책임을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완전히 면제해줄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특별한 도덕적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을 황우석이 들었어야 했다.
훌륭한 과학자는 단지 뛰어난 기술자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을 가진 진짜 지식인이어야 한다.

p.90

대부분의 적극적 협력자들과 마찬가지로, 드리외라로셸도 자신이 반유대주의자라는 것을 주저 없이 공언했다. 그러나 청년기 이후 드리외라로셸의 글과 삶이 일관되게 파시즘이 이끌린 것은 아니다. 제1차사계대전 때 베르됭 전투에 참가해 부상을 입고 제대한 그는 종전 뒤 불과 얼음의 관계라 할 다다이즘과 극우 민족주의에 동시에 발을 들여 놓았고,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질 무렵에는 스탈린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자전적 소설이라 할 <질 Gilles>에서 모든 형태의 참여를 쓸데없는 짓이라고 진단했던 그가 동시에 파시즘에 열광했던 것도 기묘하다. 이런 변덕과 모순은 한국의 유사 파시스트 지식인들에게서도 흔히 관찰되는 바다.

딱 떠오른 인물이 있군!!
'미문의 문장가'. 그 사람!

p.91

나치의 집권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인 다수결주의의 위험성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학술회의장에서의 다수결주의란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나치스의 집권 과정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과정이 보여주었듯, 정치 과정에서의 다수결주의도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그 사회에 양식 있는 언론이 없을 때 그렇다.

p. 99

헬렌 켈러의 비범한 생애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그러나 모든 장애인이 그녀처럼 비범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어린 헬렌이 가난한 집 아이였다면, 그래서 인내심과 지혜로 자신을 이끌어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는 완전한 어둠과 고요 속에서 짧고 불행한 삶을 살다 갔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신체적 불리를 사회 전체가 제도적으로 보완해주는 것이다. 행복 추구는 기본적 인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p. 203


<악마의 사전>의 저자 앰브로스 비어스는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새뮤얼 존슨의 경구를 한 번 더 비틀어 그것이 '악당의 첫 번째 피난처'라고 비꼰 바 있다. 무엇보다도, 조국이나 민족처럼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불가능하다. 우리들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사람, 풀꽃, 갈매기, 가을비, 붉은 포도주, 디스플러스 담배, 열무냉면 같은 구체적 대상들뿐이다.

허황한 이름을 팔아 스스로를 높이고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을 무서워하라는 거지. -_-;

p.251

'전향'이라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 뉘앙스를 담아 사용되지만, 나는 케스틀러의 전향에서 지식인의 용기를 발견한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 <연인>을 쓴 폴 엘뤼아르가 모스크바 재판을 옹호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몹시 놀라고 실망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캐비어를 먹으며 혁명을 찬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낼 수 없는 혁명을 옹호하는 것은 역겨운 허영이다.

p. 281


제목 : 발자국 -역사의 발자국 헤아리기
지은이 : 고종석
펴낸 곳 :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