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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2)

소금눈물 2011. 11. 7. 21:54

12/09/2007 09:53 pm

 


(문학작품에 대한) 절대적 평가기준이란 무엇인가. '언어'가 그 정답이다. 언어의 밀도가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윤식의 소설 현장 비평> 서문

p.117

글싸움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씨에게 이길 사람이 없다면, 말싸움에서 유시민씨에게 이길 사람은 없어 보인다. (말싸움에서 유시민씨를 눌렀다고 평가받는 이로 국회의원 전여옥씨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논리의 타래를 팽개친 채 막가는 '기싸움' 얘기므로 '토론'과는 무관하다.) 본디 글 잘쓰는 논객이었던 유시민씨는 사람을 압도하는 말솜씨를 보여줌으로써, 글 잘쓰는 사람은 어눌하다는 속설을 불식시켰다.

본문도 본문이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괄호안의 덧말 때문에 밑줄을 그었다. 밑줄을 그으며 웃었지만 몹시 씁쓸한 웃음이었다.

p.140

글자 꼴에 그 기능을 관련시킨다는 착상과 그 착상을 실현한 방식에 정녕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오래고 다양한 문자사에서 그 같은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글자 꼴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조음 기관을 본뜬 것이라니. 이것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

-훈민정음 연구로 학위를 받은 미국인 동아시아학자 게리 레드야드.

p. 162


레옹 베르트(1878-1955)는 소설가 겸 미술비평가다. 생텍쥐페리보다는 스물 두 살이나 손위였으나, 1931년 처음 만난 뒤 마음이 통해 단박 친해졌다. 견결한 평화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베르트는 생텍쥐페리와 닮은 점이 거의 없었지만, 우편항공기 조종사들말고는 생텍쥐페리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았다. 그는 스위스 국경 부근의 산악지대 쥐라에 처박혀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시기를 보냈다. 생텍쥐페리가 최고령 참전 비행사로 정찰 비행을 하다가 실종된 뒤 조국이 해방되고 나서야, 베르트는 자신에게 건네는 헌사가 담긴 친구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그 아름답고도 따뜻한 헌사를 담은 책을 받은 베르트는 숨이 막혀서 어떻게 견뎠을까...

p.184


공적 담론의 마당에서까지 오늘날의 한국어가 으르렁말과 가르랑말고 채워지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정서적으로 뜨겁다는 뜻일 테다. 말하자면 열정적이라는 뜻일 테다. 역사가 가르치듯 열정은 모든 진보의 동력이지만, 파괴와 자기파괴를 부추기는 영혼의 병이다.

열정은 파괴와 자기파괴를 부추기는 영혼의 병이다...


p. 195


-고종석. < 말들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