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훔치기 (1)
우리가 앎이라고 부르는 것이 본질적으로 과거에 대한 앎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p. 8
전체주의(holism)는 전체가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과 독립적인 실체이고, 그 부분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이다. 이 용어는 때로 사회적 전체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 세계관이 정치 제도에 극단적으로 구현됐을 때 이를 특별히 전체주의(totalitatianism)이라고 부른다.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가 그 예다
p. 31
순수한 민족(피), 순결한 이념, 순수한 교리 따위에 대한 집착은 흔히 광신자들을 낳고, 광신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단(異端)과 불순분자와 인민의 적과 민족의 원수를 발견해서 그들에게 성전(聖戰)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불순함에 대한 옹호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불순함을 옹호하는 정신은 너그러움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나와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서 살겠다는 정신이고, '우리' 속에도 수 많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시대 정신이다.
p. 40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성(性)을 지닌 사람들은 다른 성을 지닌 사람들보다 더 평등하다"
-교황 오한 바오로 2세
써글...
p. 43
지식인이란 세상의 광기를 자유롭게 관찰하는 사람, 확신시키기 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지배하기보다는 매혹하려고 애쓰는 사람, 순응주의에서 벗어난 사람,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있는 사람, 눈먼 확신의 속죄양.
- 자끄 아탈리.
멋지다. 찾기가 드믈어서 그렇지.
눈먼 확신의 속죄양이라...허...
p. 59
그람시에 따르면, 유기적 지식인은 어떤 계급, 특히 지배계급에 의해 창출돼 지배계급과 긴밀히,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는 지식층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지배계급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이용해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강화한다. 물론 프롤레타리아도 자기 계급을 조직하는 유기적 지식인을 거느릴 수 있지만, "기구, 국가, 기업, 파벌"에 봉사하는 아탈리의 말로 보아, 그 유기적 지식인이 노동자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아탈리가 내다보는 21세기의 지식인은 전혀 다른 유형의 지식 계급이다. 아탈리는 21세기의 지식인은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말을 살짝 흘림으로써, 실은 '지식인의 죽음"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p.60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에서 한 사람의 내면의 신념을 이유로 인신을 구속하는 경우는 없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각자의 판단이나 가치관으로서의 확신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와,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즉 양심의 자유는 침묵의 자유를 포함한다. 이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다. 따라서 "준법서약서" 제도는 물론이고, 국가보안법 제 10조 불고지죄는 양심의 자유를 선언한 헌법 제 19조에 정면으로 반한다.
p. 72
우리가 한 사람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경우는 그 양심의 표현이 자유민주적 기존질서를 해치는 구체적 행위로 이어졌을 경우다. 예컨대 어떤 사상의 공적 표현이 반사회적 폭력 행위와 불가분의 인과 관계로 맺어졌을 때, 우리는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또 한 언론사가 한 개인에 대해서 '사상검증'을 시도했을 때, 그것은 물론 그 언론사의 양심의 자유에서 출발한 것이겠지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핵심으로 삼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것이므로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마음 착하고 너그러운 지식인 고종석과 무지한 일개 대중인 나의 거리가 여기에 있다.
나는 조선일보가 이땅에 존재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록 제 주제를 알아챈다 해도 단지 백신으로서의 위치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이 땅의 악의 우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추악한 에이리언일 뿐이다.
아마도 몇 몇 무리나 개념에 대한 한 나는 "전체주의자"의 혐의를 벗지 못할 것이다.
p.73
사르트르도 옳고 리카르두도 옳다. 죽어가는 어린아이 앞에서 <구토>는 아무런 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구토>를,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런 깨달음을 얻지도 못할 것이다. 문학이 있기 때문에, 한 어린아이가 굶주려 죽는 것은 추문이 된다. 그것이 문학이 남아 있어야 할 이유다.
p. 80
그러나 데모크라시(인간의 지배)를 대치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테크노크라시(기술의 지배)는 리프킨이 보기에 기술 유토피아가 아니라 기술 디스토피아아 가깝다. 최초의 목화따는 기계가 미국 남부의 흑인들을 농장 경제의 착취로부터 '해방'시켰을 때,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북부 도시의 산업 프롤레타리아로 변신해 제조업 분야로 흡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 1차 산업에서 서비스 부문까지 생산 활동의 전 영역을 감당하고 있는 실리콘칼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21세기의 노동력은 어디로도 흡수되지 않는다. 이 노동자들이 재교육을 통해서 다가올 세계의 엘리트 직업 집단인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분자생물학자, 경영컨설턴트 등으로 거듭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리프킨이 '새로운 세계인'이라고 부르는 이 미래의 엘리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시간은 넘쳐나고 일은 없다. 이제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착취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쓸모없는 존재로서 무시당할 뿐이다.
더 이상 착취당하지 않는다... 쓸모없는 존재로서 무시당할 뿐이다...
p.153
고종석. <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