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모리스2017년 8월. 모리스 블라맹크 - 한가람 미술관

소금눈물 2017. 8. 26. 09:22

 

 

여름휴가를 생각하면서 블라맹크가 온다는 소식에 들떴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간혹 유명미술관 특별초대전을 통해 몇 점 보기는 해도 이렇게 단독 전시회가 열리는 건 처음이다.

무려 80여점에다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도 석점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무난하고 아름다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야수파 화가의 작품은 이렇게 단독전으로 보는 건 아마도 처음인 듯 (내가 이쪽에 짧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막상 휴가 일정을 잡아놓고 전시회들이랑 맞춰보니 동선이 안 맞아서 눈물을 삼키며 포기했었다.

그런데 마지막날 시간이 비어버렸다. 오호!!

 

호텔 체크아웃하고 바로 개관시간에 맞춰 한가람으로 달려갔다.

블라맹크!! 블라맹크라니!!!

 

 

 

 

1905년 프랑스 빠리 살롱 도톤느의 전시실에서 열린 야수파의 작품전.

튜브에서 그대로 물감을 짜내어 화폭에 그려낸 듯한 채도높고 강렬한 색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말 그대로 야수의 울부짖음이 들릴 듯한 미술사조를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하기로는 앙리 마티스와 피에르 알베르 마르케,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 라울 뒤피, 에밀 프리에스 등이 있으며 이 사조의 끝에 이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앙리 루오가 홀로 서 있다. 투박하고 굵은 윤곽선, 어둡고 난폭한 붓으로 표현한, 가난한 사람들, 어릿광대와 소년과 그들과 함께 있는 가시관을 쓴 예수... 전통적인 서양회화에서 한없이 아름답고 숭고하던 예수의 얼굴이 그토록 거칠고 투박한 얼굴이 보여준 경건과 신성이 또 있었던가.

 

작가마다 표현과 이상이 다르지만 내가 아는, 내가 본 블라맹크의 그림들 속에서 '겨울나무'를 본다. 쓸쓸하고 무연하면서도 단독자가 된 겨울 나무.

흘러넘치는 과잉의 순도높은 화려한 물감들 사이에서 겨울나무라니. 형용모순이다.

 

 

 

 

 

블라맹크는 처음부터 미술수업을 받고 시작한 화가는 아니었다. 자전거를 좋아해서 경주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고 기계발달이 지배하는 세상을 마뜩찮아하지 않은 화가였으나 자동차를 다섯 대나 가질 만큼 기계를 좋아한 사람이기도 했다. 음악가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자유롭고 격정적인 붓터치를 구사했던 야수파가 어쩌면 그의 성정에 딱 맞았을 것이다.

 

 

 

 

앙드레 드랭의 영향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반고흐를 누구보다 좋아하여 초기의 그림은 유화물감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마띠에르)극적이고 강렬한 터치감과 색감의 작품이 보인다. 블라맹크의 작품 들 속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것은 흰색물감의 존재감이다. 보통 화폭에서 흰색은 지양되는 색인데도 하늘과 바다, 눈길, 지붕, 들판, 파도 등 어디서나 강렬하고 아름다운 순색 화면에서 흰 붓터치는 가장 효과적이고 독특한 블라맹크 작품세계의 특징이 된다.

내가 특히나 좋아한,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겨울나무들을 본다고 했던 그 특징도 흰색 물감의 효과이다.

 

전시장을 돌다보면 비슷비슷해보이는 마을 풍경들이며 길이 많이 보이게 된다. 같은 구도처럼 보이나 화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질듯한 하늘에서 꿈틀거리는 구름들을 찾아보고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인적이 끊어진 북구겨울밤의 눈쌓인 길가, 울창한 숲의 나무들 사이로 달빛에 하얗게 빛나는 길을 혼자서 걷고 있는 여인,  나무와 집은 마치 짐승의 그림자처럼 음험하다. 거센 파도에 흔들리는 조각배, 거친 붓터치의 파도는 관람자의 눈길을 사로잡아 불안하고 격렬한 파도들 사이로 이끈다.

 

한 번 돌아보고 아쉬워서 다시 처음부터 돌아보았다. 두번째는 하늘만 보면서-

 

전시 자체는 정말 만족했다. 그러나!!

 

방학기간이다보니 어린이 단체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그건 너무 힘들었다. ㅜㅜ

어린이담당 큐레이터가 잘 관리를 해주었지만, 그 감당 안 되는 발랄함이라니 ㅠㅠ

아이들 숙제도 좋지만, 야수파 화가의 작품을 초등학교 아이들이 감당하기란 좀 높지 않나. 방학시즌의 미술관 관람은 일반 관람자들로서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ㅠㅠ

 

 

 

 

 

 

이번 전시의 독특한 기획 중 하나가 전시장 말미에 설치한 작품 3차원 영상관이었다.

3면을 블라맹크의 작품들로 채워 마치 차를 타고 지나가며 작품들 속의 거리를 지나가는 듯한 효과가 아주 좋았다.

 

 

 

 

아이들이 특히나 좋아했다.

 

다음에는 언제나 되야 이렇게 함빡 맘에 들게 블라맹크의 작품들이 다량으로 나올지 모르겠다.

정말, 근래 들어서 가장 좋은 전시회 나들이었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 - 역시 나 같은 그림 한량들은 서울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