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여자> 로뜨렉
물랭루즈의 키 작은 신사 뚤르즈 로뜨렉이 그린 이 여인은 마리 라 로사라는 설도 있고, 몽마르뜨에서 가난한 화가들의 모델을 하다 그 자신 화가가 된 쉬잔 발라동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발라동이라는 말들이 더 많네요. 여기서는 발라동이라고 믿고 가겠습니다.
발라동은 여러 화가들의 작품에 등장합니다. 로뜨렉 뿐 아니고 르노아르의 작품에도 등장하고 샤반, 드가, 피카소와도 교류를 하였고 작곡가 에릭사티의 연인이 되기도 합니다. 형편이 좋지 못한 화가들의 모델을 하면서 길지 않은 연인노릇도 겸하게 되지요. 열 여덟의 나이에 아버지가 분명치 않은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를 낳았던 발라동. 모리스 위트릴로도 나중에 화가가 되지만 열네 살의 나이에 이미 알콜중독이었다는 걸 보면 난잡하고 가난한 그녀의 생활환경이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지요. 만인의 뮤즈라는 말은 그들 누구와도 성실한 연애는 어려웠다는 말일 것입니다. 몇 푼의 돈으로 몸을 보이고 또 매음을 하고, 그렇게 하루를 살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갔던 고단한 여인 발라동.
술잔을 앞에 둔 여인은 무엇엔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습니다. 아직 앳된기운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무렇게나 머리를 질끈 매고 생각에 잠긴 이 여인은 세상을 다 알아버린 여인의 고적함, 우수 같은 것이 어리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자식을 낳은 10대의 미혼모라... 지금 세상에서도 이런 여성이 겪어야 하는 삶은 결코 쉽지 않지요. 그러나 화면 속의 그녀는 신산스러운 삶이 결코 완전하게 그녀를 망가뜨릴 수 없는 깊고 뚜렷한 자의식이 엿보입니다. 한 병의 술에 의지해서 고단한 삶을 위로받으며 자신의 내부를 깊이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은 발라동의 눈빛.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