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어머니들>- 케테 콜비츠

소금눈물 2015. 4. 14. 20:54

 

 

일주일 단위로 각기 다른 주제로 그림편지를 쓰겠다고 했는데 어느덧 <어머니> 주제의 마지막 그림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어떤 그림을 선택할까 고민도 되었고,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보셨을 어머니 주제는 역시 <성화>일텐데 어쩌다 보니 한 점도 이야기를 못해서 그것도 걸립니다.

고심하다 그저 제가 하던 대로 편히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다른 그림은 또 불러올 기회가 있겠지요.

 

케테 콜비츠라면 이제 여러분들은 아십니다.

전쟁을 거치면서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독일의 빈민노동자와 함께 했던 어머니 같았던 판화예술가, 조각가,또한 반전운동가이기도 했구요. <농민전쟁>연작을 거치면서 빈민노동의자의 분노에 함께 하던 그녀는 1차대전을 거치고 그 전쟁에 아들 페터를 잃으면서 변합니다.  사실 페터가 출전할 당시, 남편과 달리 케테 콜비츠는 페터의 선택을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조국이 부르는데, 시대를 책임지는 젊은이로서 그 선택을 존중해야되지 않나 일기에 쓰기도 했지요.조국을 위해 가치 있는 죽음을 택한다면 사사로운 감정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죽은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인류 역사에서 조국을 위해, 민족을 위해, 혹인 신이나 진리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역사를 만들고 그 피의 무게만큼 인류는 족적을 달리해왔습니다. 그 제단에 아들을 바치는 것은 용감한 어머니의 모습이라고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민중을 생각했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그녀로서는 어쩌면 아프지만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페터의 죽음 이후 그녀는 그 정의라는 것, 전쟁의 참상과 속살을 마주하며 회의하게 됩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무고한 젊은이들을 끌고 가 그들의 어머니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전쟁이 무슨 대의가 있다는 말인가...

늙은이들이 선택하고 젊은이들이 죽는 것이 전쟁이라고 하지요. 그녀는 페터를 잃고나서 어머니로서의 자각, 생명을 껴안고 지켜내는 모성의 역할을 자각합니다. 무고한 어린것들을 무차별로 학살하는 전쟁에, 그 끔찍한 폭력에 도대체 어떤 정의가 존재한다는 말인가요?

 

며칠 전, 기자의 카메라를 마주하고 겁에 질려 울부짖으며 살려달라는 시리아 어린이의 기사를 읽으며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어린 동생의 귀를 막으며 품에 끌어안는, 기껏해야 저도 예닐곱이 되지 못했을 어린아이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어린것들, 순한 여린싹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정의이고 대의인 것입니다.

 

힘없고 가난하지만 서로가 끌어안을 수 있는 한 팔을 벌리고 연대하여 어린 것들을 완강하게 지켜내는 저 어머니들의 모습, 과장되게 크게 그려진 손의 힘, 그 따뜻하고 절박한 손짓이 두려움에 찬 아이들의 눈을 지킵니다.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팔, 그리고 우리들이 함께 어깨를 겯고 굳세게 끌어안은 이 팔들 뿐입니다. 어머니들입니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데, 하자고 생각하면 가슴이 먼저 막혀서 아무 말도 못하고 망연히 앉아 있다 가슴을 닫습니다.

 

함께 울고 울었던 1년의 눈물. 우리들이 서로 손을 뻗어 이 품 안에 다친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즐거운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오늘 밤, 저 사랑스런 아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 중 누구도 오늘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 희망을 품고 떠나던 일가족, 몇십 년 만에 친구들과 큰 마음 먹고 여행을 떠나던 벗들, 군대 가기 전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나왔던 착한 청년들... 그들 모두가 우리의 모습이었으니까요.

다시는 꿈에서라도 있어서는 안될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세월호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유가족들께 위로와 함께 연대를 약속합니다.  제 손도 내밀겠습니다.

 

 

다음 주제는 <아버지> 입니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