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케테 콜비츠
칠흑같은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벌판, 노인이 허리를 숙이고 초롱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무언가를 찾고, 아니 확인하고 있습니다.
들판 가득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전쟁 희생자들의 시신입니다.
변변한 군복도 없이 끌려와 여기 이렇게 아무렇게나 뒹굴고 썩어가고 있는 시신들. 남자의 것처럼 거칠고 뻣뻣한 손으로 시신의 아래턱을 들어 아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있는 늙은 어머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미 넘어선 어머니의 가슴처럼,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게 뭉개진 어둠 속에서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손과 젖혀진 아들의 얼굴로만 빛이 머뭅니다.
여기 이렇게, 수도 없이 뒹구는 시신들의 허물어진 몸뚱이가 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했는지를 말해줍니다. 벌써 시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저 시체의 벌린 입에서는 다시는 그리운 어머니를 부르지 못할 것이고,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노래하지도 못하겠지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끌려와 죽임당하고 버려진 죽음의 벌판에서, 비틀비틀 움직이고 있는 단 하나의 생명은 그러나 저 죽음보다 조금도 낫지 못합니다. 영광도 없이, 보람도 없이 버려지고 썩어가는 내 아들, 그리고 또 누군가의 아들, 아들들... 죽기 전에 내가 낳은 사랑하는 아들의 시신만이라도 온전히 찾아 흙 속에 묻을 수 있기를, 단 하나의 간절한 소망으로 헤메는 어머니.
케테 콜비츠는 19세기 말 빌헬름 황제시대에는 반시대적인 예술가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1차대전이 터지고 히틀러시대에 이르러는 반체제인물로 낙인이 찍히고 그 작품들은 반동의 결과물로 대부분 몰수당하거나 소각당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이른바 탈예술집단(Entartete Kunst)의 일원으로 지목되어 모든 창작활동이 금지되었고 대학교수의 직위도 박탈당했지요.
1869년 제정 프러시아 쾨니히스베르크는 외조부와 아버지에 걸쳐 정치적,종교적 자유와 정의를 지향하는 가풍에서 자랐습니다. 남편인 칼 콜비츠 역시 빈민가에 자리를 잡고 가난한 노동자들과 빈민들을 돌보며,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며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빈민들에 대한 애정을 가졌던 그녀와 함께 합니다. 케테 콜비츠가 그렸던 그림의 소재는 역시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이었으며 그들의 열악하고 고통스런 처지를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갑니다. 연작인 <방직공의 봉기>,<폭동>,<죽음>등의 작품을 연달아 내며 대 베를린 예술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확정받지만 정부고위층의 압력으로 수상은 좌절됩니다.
민중과 노동자의 예술적 어머니로서 자리매김하던 그녀가 변모하게 된 것은 1차대전에서 사랑하는 아들 페터를 잃으면서부터입니다. 잔인한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로서, 반전평화운동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전시체제에서 이러한 그녀의 행보는 몹시 위험한 것이었지요. 2차대전에서 다시 손자 페터를 잃고 그녀를 지지하고 사랑해주었던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의 작품은 반전과 더불어 죽음으로 더욱 가까이 침잠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자화상> 연작을 보면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죽음의 신을 간절히 기다리며 생존의 뜻을 놓아버린 늙은 어머니의 모습이 절절히 보여서 몹시도 가슴이 아픕니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비난과 위협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녀의 예술혼과 판화가 가지는 단순하고 뜨거운 고발의 힘은 세계 여러나라로 퍼져가서 민중미술에 큰 획을 긋게 되었는데, 대중을 위한 예술에 고민하던 노신은 그녀의 작품에 크게 감동을 받아 중국의 목판화에 그녀의 판화기법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80년대 민중미술의 걸개그림에도 케테 콜비츠의 영향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외세가 만든 격랑 속에 첨예한 이념으로 대립하면서 수 많은 죽음을 만들어냈던 이 산하의 골골에도 저 어머니의 모습이 숱하게 있지요. 정부의 모습이 어떠하던, 권력이 지향하는 이념이 무엇이었던, 무죄한 죽음들은 수도 없이 이 땅을 피로 물들였고 그 때마다 환한 대낮에 마음놓고 통곡하지도 못한 어머니들은 어둠을 틈타 시신을 뒤지며 아들의 얼굴을 확인하였겠지요.
가벼운 입으로 전쟁을 논하는 무리라면, 책임지지 못할 도발로 남의 아들들을 등 밀며 저희들은 정작 뒤로 빠져 계산기를 두드리는 인간들이라면 어떤한 형태든 그들의 애국과 애족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