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 대만여행 세째날- 진과스
예류에서 진과스까지 택시로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해가 쨍쨍 뜨겁던 날씨가, 산 속 광산마을인 진과스로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흐려집니다.
돌아다니기엔 오히려 낫겠어요.
산꼭대기에 올라와 잠시 택시에서 내려 해변을 내려다봅니다.
거대한 구름띠가 바다로부터 밀려오고 있습니다.
비를 잔뜩 뿜은 해무입니다.
바람보다도 빠르게 올라오는 속도에 혀를 내두릅니다.
잠깐 걷힌 사이.
이렇게 깊고 깊은 산속에 광산이 있답니다.
산 아래 바다 쪽으로 무겁게 깔린 것이 해무예요.
날은 흐리지만 비 묻은 바람도 조금씩 불고.
뜨거운 햇볕보다는 한결 견디기 쉬워졌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택시에서 아저씨가 두 시간 후에 마을 끝 택시 정류소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우리는 진과스에서 유명한 광부도시락을 먹기로 했는데 아저씨 점심은 어떻게 하시겠냐고 여쭈어보니
"비에딴신!"
걱정마세요. - 하십니다.
우리 일행 넷이서 보낼 진과스 광산. 열심히 디비 파 주마 ^^
나중에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룰루랄라 걸어갑니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예쁜 꽃이네?
한눈도 팔고
해무 때문이라고 박박 우겨봅니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양반은 관운장이시랍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셨네요.
의리와 충절의 상징인 관운장이 신격화되어 민중들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중화권 뿐 아니라 우리나라 무속신앙에까지 이 분의 자리가 적지 않지요.
그래도 이렇게 직접, 부처가 아닌 관우가 거대한 조각으로 자리잡고 마을을 지키는 모습은 참 이채로웠습니다.
창가에서 보는 풍경이 이쁘겠다 싶은 까페는 그냥 지나치고
광산마을 입구에는 후안미로의 그림에서 본 듯한 조각품이 맞아줍니다.
헐!
우리보다 빨리 해무가 마을로 날아왔습니다.
산 등성이를 감싸는 구름들.
산 꼭대기 쪽으로 일본식 신사가 보이지요?
이곳은 2차대전시 악명 높은 일본군 전쟁포로 광산이었답니다.
일본 식민지 시절, 철로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금광이 발견되면서 전쟁포로들을 끌어다 광산을 개발시켰대요.
전쟁이 끝나고 금광이 고갈되면서 쇠락해지다가, 폐허가 된 마을을 관광산업으로 개발시키면서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답니다.
영화 <비정성시>의 배경이 된 곳이랍니다.
중간중간, 일제가 만든 구조물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큼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그런지 별로 위화감이 없이 자연스럽게 문화재처럼 존재하더군요.
지금은 접근할 수 없지만, 산꼭대기까지 닿는 계단도로와 수로도 보이구요.
로마식 수로
이곳을 보니, 2차대전중에 징병으로 끌려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우리 젊은 선조들의 슬픔과 한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로나 알고 있는 하이난이나 이곳이나, 그리고 유명한 일본의 광산들 곳곳마다 조선인 징병들과 위안부로 끌려온 소녀들의 한을 잊지 말아야 할텐데요.
본격적으로 광산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
이건 뭐지?
슉 지나쳤습니다.
진과스에는 따로 입장료는 없지만, 갱도체험관에는 입장료가 있습니다.
갱도 바깥에는 당시 광부들을 기억하는 조각상이 있네요.
갱도에 들어가기 전, 안전모를 받아 쓰고.
뭔 심령사진을;;;
금맥이 보이나 열심히 찾아보세요 ^^
중간중간, 금맥을 찾고 목책을 만들고 폭발시키고 채굴하고 -
그런 과정들을 재현해놓았습니다.
이분들은 도시락을 다시며 잠시 쉬고 계십니다.
갱도출구에는 옷과 신발을 벗겨 숨겨놓은 금조각을 찾고 있네요.
입 안까지 벌려 감춘 금조각을 뒤지고 있나봐요.
갱도는 길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태백에 있는 석탄박물관보다 훨씬 훨씬 더 작아요.
석탄박물관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고생대의 생물 화석에서부터 여러가지 아름다운 원석들 자료가 많지만 여긴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갱도체험 정도입니다.
근데, 그 유명한 황금금괴를 찾으러 한참을 내려오는데 도무지 안 보입니다.
뭐야.
히로히토 태자를 위해 지어놓았다는 태자별장까지 이르러서 아 이건 이상하다 싶어서 물어보니, 다시 올라가랍니다.
-_-;
진과스 신사 산신제를 재현해놓았군요.
포로들 끌어다 강제노동 시키며 일본 식민지 부귀영광 오래오래 누리게 해 달라고 치르는 산신제를 왜 대만에서 기념하고 전시회까지 열어주는 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잔뜩 내밀고 전시관을 휙 돌아보고
에고... 다리 두들기며 다시 위로 올라갑니다.
헐랭.
우리가 갱도체험을 한다고 지나쳤던 바로 그 옆 건물이었어요.
이런!!
노란 두더지아저씨 동상이 떡 하니 서 있는데 그걸 모르고.
아직 이건 금이 아닙니다.
도금입니다.
이게 뭘 찍은 건지 여러분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으시겠지만
갱도의 단면도라고 박박 우깁니다. ㅜㅜ
여러분, 사진기 좋은 거 사가세요. ㅠㅠ
원시적으로 사금을 제련하는 모습
순금으로 만든 악세서리들.
엄청 쪼그만 순금 조각입니다.
개미 다리의 마디마디까지 세밀하게 만들었네요.
어제 고궁박물관에서 보았던 그 징그런 세공기술이 떠오릅니다.
으...독한 사람들.
이게 그 유명한 진과스의 명물 황금 금괴입니다.
저걸 만지면 부자가 된다고 해서 줄을 지어 저렇게 맨손으로 쓰다듬게 해준답니다.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금괴랍니다.
앞의 숫자는 실시간으로 적용되는 금괴 가격입니다.
사시겠어요? ^^
잠깐 망설였는데, 가방에 넣고오기는 좀 무겁고 해서 그냥 말았습니다.
다음에 한번 생각해볼게요.
근데 아요... 배가 고파요. ㅜㅜ
어느새 오후 두 시가 되어가네요.
자... 그럼 진과스의 명물, 광부도시락을 먹어볼까요?
줄이 한참 기네요.
늦게 가면 그나마 도시락 동난다는 말을 들어서 일단 밥부터 먹자했습니다.
진과스 도시락은 당시에 광부들이 먹던 그대로 스테인레스도시락그릇에 밥과 돼지고기튀김을 올려주는데 여기 명물이랍니다.
이 도시락을 기념품삼아 가져갈 수 있게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방문기념으로 가져가는데 우리도 가져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주문하러 간 친구가 안 옵니다.
삼십분이 넘게 기다리는데, 친구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돌아옵니다.
빈손이네요.
- 안에서 난리가 났어요.
- 왜?
- 한국인 아저씨가 문을 막고 큰소리로 점원과 싸우고 있어요.
- 어쩐 일로?
- 아저씨네가 도시락을 먹고 보니 바닥이 완전 까맿더래요. 그게 도시락을 씻지 않아서 그냥 시커먼 기름때가 막 나왔대요. 실수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설거지를 하지 않고, 손님들이 밥을 다 먹으면 그대로 밥을 담아 팔고팔고. 애기까지 그냥 그대로 먹었는데 너네 이거 해명하라고. 그런데 점원들은 모른 척 하고 대꾸도 않고.
아저씨는 몹시 화가 나서, 밖에 줄 서 있는 한국인들에게 큰소리로 다 알리겠다고, 너희들이 우리를 무시해서 이런 짓을 하는 거 아니냐고. 기분나빠서 그냥 가려다가, 내가 참고 그냥 가면 뒤에 오는 한국인들이나 다른 관광객들에게 계속 이런 짓할 거라고, 그걸 생각해서 못 참겠다고.
- 어유 드러워라.. 어째 그렇게 되었냐.
- 문 막고 아저씨 난리났어요. 그런데 뻔히 알텐데 점원들은 못알아듣는 척 하고 있어요.
이런...-_-;;
배가 몹시 고픈데도, 밥맛이 뚝 떨어졌습니다.
- 드시고 가겠어요?
같이하게 된 커플들에게 물어보니 고개를 젓습니다.
- 배가 고프긴 하지만 못 참을 정도도 아니고, 알고도 저건 못 먹겠네요.
- 그럽시다. 우리 그냥 가요.
진과스쾅궁식당 주인장.
그러지 마세요.
여기 한국인들한테까지 소문난 명소잖아요. 그리고 여기 오면 다들 이 도시락 먹으로 올텐데, 진짜 이러지 맙시다.
우리 일행은 이 소동 때문에 점심을 걸렀지만, 이 다음에 오시는 분들에겐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고치셨겠지요?
사실 이 식당 아니고는 딱히 먹을 데가 없어요. 예류지나, 진과스,스펀까지는 먹을 데가 마딱치 않은 고로, 이곳에서 드실 마음이 없는 분들은 가벼운 간식 준비하셔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은 한참 남았는데 뙤약볕이 되었습니다.
약속한 택시 정류소에 갔는데 도무지 아저씨 차는 보이지 않아요.
이상하다?
마을 길을 헤메는데, 다른 택시 아저씨가 더 내려가는 길이 없다고, 오던 길로 올라가라네요.
분명히 여기 정류소에서 택시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버스정류장에 올라가, 안내원 아저씨께, 택시승강장이 어디냐, 기사들은 어디에 쉬느냐 물어보니 언덕 위 작은 주차장이랍니다.
허덕대며 다시 언덕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마을 버스가 지나가는 광산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택시주차장.
그러나 우리 택시는 보이지 않고.
- 황씨아저씨 전화번호 모르세요?
- 우리 기사아저씨는 모르고, 이 투어 예약했던 제리아저씨만 아는데요?
- 그럼 제리아저씨한테 전화해보세요. 우리가 기다리니 찾으러 오라구요.
몇 번이나 시도를 해도 전화가 안 됩니다. 받지 않습니다.
그냥 기다리기엔 날도 너무 덥고.
주차장 아래 진과스 인포메이션으로 찾아갔습니다.
이러저러해서 기사아저씨와 통화를 하고 싶다. 그런데 안 받는다. 우리 전화가 안 되는 것 같으니, 유선전화로 이 번호좀 걸어달라.
인포메이션 안내원들은 친절했습니다. 그러나 전화는 여전히 불통입니다 -_-;
- 저기 버스 승강장 안내원은 택시주차장이 언덕 위라고 했다. 그 외에 다른 곳이 있느냐.
없답니다. 거기 뿐이랍니다.
그럼. 통화가 안 되는 것 같으니, 이 전화로 다시 전화가 오면 꼭 알려달라.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노라고.
꼭 전해주겠다 하셨습니다.
다시 뙤약볕이 내리쬐는 언덕 위로 올라가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 안 옵니다. ㅠㅠ
뭐야 이거. 아저씨 투잡 나간 거 아니야? 아까 돈 안 줬지? 천만다행이다.
불안과 불만으로 네 사람의 얼굴이 점점 붉어집니다.
폭발하기 직전, 친구가 혹시나 하며 인포메이션으로 내려가더니 헐레벌떡 돌아왔습니다.
- 다른 곳에 주차장이 또 있대요. 투어택시들은 거기에 선대요.
- 무슨 말이야! 두 군데서 똑같이 여기 주차장이라고 했고, 아까 인포메이션에서 분명히 내가 외국인관광객들 투어시키는 택시기사 주차장을 찾는다고 물어봤는데 여기 뿐이라고 했어.
- 그분 아니고 다른 젊은 분이 교대로 들어왔길래 물어보니 다르게 알려줬어요.
이런 젠장.!
나무들 사이로 가려있던 좁다란 샛길을 내려가니 바로 주차장이 따로 있었어요.
아니 세상에, 인포메이션 바로 아래에 있는데 왜 그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관광객들이 택시투어로 많이 올텐데, 그분들이 서는 주차장을 정말 몰랐을까요? 그 주차장에는 모두 투어택시만 있었는데?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황씨아저씨가 느긋하게 웃으며 다 봤냐고 물어보십니다.
- 아 아저씨! 전화도 안 받으시고! 제리아저씨 통화도 안 되고! 걱정했잖아요!
- 걱정마세요.
- 아니 우리가... 연락이 안 되니까 답답해서
- 괜찮아요.
아저씨.. 우리가 안 괜찮았다구요... ㅜㅜ
무슨 일일까요.
아저씨는 가면서 분명히 다른 사람과 휴대전화로 통화를 했는데 자기 전화번호는 안 알려주시네요.
우리가 투어 예약을 했던 제리아저씨도 전화를 끊어놓구요.
덕분에 점심도 놓치고 시간도 한시간 반을 넘겨버렸습니다.
그래.. 참자.. 다음 여정이 있으니까.. ㅠㅠ
뭔가 석연찮은 감정을 가지고 스펀으로 출발합니다.
화를 내고 싶어도, 예류에서 아저씨가 주신 시원한 물과 쩐주나이차를 받아먹은 생각에 더는 싫은 소리를 못합니다.
다시 스펀으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