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 토요일 마지막 수업은 가정시간이었다. 그동안 배운 자수로 테이블보를 만들고 있었다. 이따금 소근대는 소리나 모자라는 실을 앞뒤 친구와 나누어갖는 소리만 간간 들릴 뿐 교실은 조용했다.
한참 수를 놓고 있는데 회초리로 책상을 땅! 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가정선생이 회초리를 들고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은정의 자리였다.
반사적으로 은정의 책상으로 눈이 갔다. 거기엔 수틀이나 색실이 없었다. 날마다 끼고 다니다가 표지가 너덜너덜 해어진 국사책과 빨간 줄이 빈틈없이 쳐진 대학교재 한국사였다.
“이 기집애. 내가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니! 너 내 수업 시간에 국사책 한번만 더 보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성적도 엉망인 주제에 대 놓고 이 짓을 해? 내가 우스워? 엇다 대고 반항이야 반항이!”
가정선생이 은정의 어깨를 마구 흔들다 휙 떠밀어버렸다. 은정이 쓰러지는 듯하다가 오똑하게 똑바로 앉았다. 눈에 힘을 주고 입술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가정선생의 얼굴은 불에 달군 것처럼 보였다. 호되게 뺨을 갈겼다. 얼굴이 휙 돌아간 채 잠깐 침묵이던 은정이 별안간
“아악!”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옆자리 아이의 바늘을 잡아채어 자신의 손등을 마구 찌르고 할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은정은 제 손등을 긁고 찢으며 마구 고함을 질렀다. 찢어진 살점 밑으로 붉은 피가 순식간에 번져나왔다. 붉은 핏방울이 흰 교복 블라우스로 뚝뚝 떨어졌다. 고개를 저으며 비명을 질러대는 은정의 얼굴은 야차와 같았다.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옆 교실에서 뛰어온 영어 선생이 그 애를 잡고 팔을 두로 꺾어 책상에 엎드리게 할 때까지 아무도 그 애를 막을 수 없었다.
은정의 비명이 멈추었다.
아이들도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터뜨린 울음을 멈추고 숨죽여 그 애를 바라보았다. 가정선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블라우스에도 핏방울이 튀어 있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이 웅성대고 영어 선생이 한숨을 돌리는가 싶자 은정은 번개같이 튀어 일어나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연달아 들리는 파열음. 줄지어 선 복도의 유리창을 맨 손으로 창창 깨며 달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비명이 다시 터졌다. 다른 교실의 창문도 열리기 시작했고, 그 창문이 열리기 무섭게 은정의 맨 주먹에 박살이 났다.
복도에는 유리조각과 핏자국이 낭자했다. 교실 세 개를 다 지나치지 못하고 잡힐 때까지 은정은 악을 쓰며 유리창을 깨고 또 깼다. 선생들에게 붙잡혀 뺨을 맞으며 정신을 잃을 때까지 몸부림을 치며 깨진 유리조각 위에서 뒹굴었다. 체육선생의 등에 업혀 양호실로 가는 은정을 나는 지켜보았다. 수업을 마치는 벨이 구원처럼 울렸다. 꿈에서 깬 듯 아이들이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천치 같은 것. 병신은 바로 너야. 너를 경멸해. 너는 이제 전교생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거야. 국사선생은 이제 너를 두려워할 걸? 제일 끔찍한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나를 두려워하는 일이라는 걸 너는 이제 알게 될 거야. 너도 혼자가 될 거야. 나를 버렸으니 이제 네 옆에도 아무도 남지 않겠지.
양호실에 가 보니 은정은 깊게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눈을 뜨면 마지막 한번만 물어봐 줄 것이다.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예전처럼 나와 함께 공부도 하고 잘 지내겠다고 하면 모두 용서해줄 것이다. 시험에도 나지 않을 역사 뒷이야기며 한문 공부 따위로 밤새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라고 약속해준다면 나도 다 잊어주겠다고 할 작정이었다. 한 시간 내내 나는 은정의 침대를 지켰다. 아무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가방을 가지러 교실로 돌아갔다. 어느새 복도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아이들도 청소를 마치고 다들 돌아갔는지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수를 놓다 만 수틀과 색실이 든 내 가방만 그 자리에 오도카니 있었다. 은정의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피가 묻은 국사책과 국사선생의 책꽂이에서 훔쳐온 한국사 책이 흐트러진 채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책을 내 가방에 챙겨 넣었다.
진정제를 맞은 은정이 깨어난 것은 학교가 다 파한 저녁이었다. 은정이 남아 있는 것을 모르고 양호선생도 퇴근을 했는지, 아니면 좀 더 진정을 하라는 뜻이었는지 그 뒤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까지도 생각했다. 눈을 떴을 때 내 얼굴을 보고 반가워해주면, 제 옆에 있는 나를 고마워해 주면 나는 정말 다 잊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은정은 그러지 않았다.
“내 국사책 어디 있어?”
나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은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애의 목소리가 그처럼 날카로운지 나는 처음 알았다.
나는 침을 삼켰다. 이 모든 일은 네가 택한 거야. 네가 시작한 거야.
우리가 학교에 남아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학교에는 아무도 없다. 은정이 오늘 어떤 짓을 했는지는 온 학교가 다 안다. 안 그래도 아이들 모두가 싫어하는 은정이다. 오늘 한 일로 보아 무슨 짓을 저질러도 그 애라면 더한 일도 저지를 아이라는 걸 다 알 것이다.
국사선생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이들에게, 더구나 은정에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그에겐 상처 입은 사춘기 소녀를 감싸주고 어루만져줄 깊은 사려가 없다. 빗나가는 그 애를 안타까워할 선생도 친구도 아무도 없다. 나뿐이다. 그런데도 나를 버리다니. 이런 하잘 것 없는 책이 무슨 대수라고. 그 못생기고 잔인한 국사선생이 뭐라고.
“교실 문이 다 잠겼어. 네 가방을 과학실에 갖다 두었어. 그 책을 다른 사람이 알면 가져갈까봐서...”
은정의 눈이 반짝 떠졌다.
나는 그 말만 하고 금방 몸을 일으켰다. 은정이 일어나 앉는 것을 보며 양호실을 빠져 나와 사 층으로 올라갔다. 절뚝절뚝... 자꾸 발을 헛디뎠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사층은 많이 낡았다. 은정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빴다. 좀 널따란 창가 턱이 어디가 약해져 허물어져 있는지 나는 잘 안다. 은정이 찾지 않는 동안 나는 혼자 과학실에 와서 놀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줄 틈이 없었다. 두 마리의 생쥐처럼 들락거리던 이 교실을 은정이 찾아온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내가 절룩거리는 다리로 힘겹게 비비적거리며 창문을 열었을 때 교실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은정이었다.
은정의 낯빛은 창백했다. 고집스럽게 다문 입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한쪽 팔을 가볍게 창턱에 놓고 몸의 무게중심을 단단한 벽쪽에 잡았다. 국사책은 창턱에 놓여 있었다.
은정이 교실 입구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얼마든지 네 말을 들어줄 수 있어 이제. 말해 봐. 네 말을 들어주는 마지막 사람이 되어줄 테니까.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불빛이 또 하나 반짝 켜졌다. 앞뒤로 반짝이는 불빛들이 고왔다.
“손에 닿지 않은 불빛은 참 예쁘구나. 이리 와 봐. 불빛이 마치 반딧불 같아.”
은정의 눈길이 창가로 왔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은정이 창가로 다가왔다. 내 손짓을 따라 내 옆으로 와서 건너편 마을을 바라보았다.
저녁바람에 자꾸 볼에 머리칼을 붙였다. 은정의 눈이 허공을 더듬었다.
“망초가 왜 망초냐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해달라고 무덤가에 피는 꽃이라 망초래. 나는 반딧불도 그런 것 같아. 살아서 오래오래 행복해달라고,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기억해달라고 반짝이는 불빛 같아. 사람이 살면서 평생 가장 그립고 간절한 것이 있으면 죽어서 그것이 된다는데 나는 나중에 반딧불이 되고 싶어.”
“너는 누구에게 빛나고 싶은 거니?”
은정의 눈빛이 흔들렸다. 작은 경련 같은 것이 입가를 지나갔다.
“다 잊어버려. 네가 더 망가지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겠어. 예전으로 돌아와 줘 은정아. 나는 네가 정말 좋아.”
간절히 부탁하는 내게 은정이 비싯 웃었다.
“네가? 왜? 나는 네가 필요 없는데?”
“필요, 없어?”
“너는 언제까지 너만 봐달라고 징징대는 어린 애야. 유치한 소꿉장난이 좋을 나이는 다 지났는데 너는 너만 봐 달래지. 나를 조롱하는 아이들 속에 네가 있다는 걸 나는 알아. 좋았니? 내가 멸시당하고 밟히는 걸 보는 것이 좋았니? 그런데 네 옆에 있어달라고?”
“아니야! 너한테는 나 밖에 없어. 그 머저리 같은 선생이 뭐가 좋다고. 그 사람이 너를 얼마나 형편없는 애로 떠들고 다니는지 몰라서 그래? 너한테는 나뿐이야!”
“그 사람은.”
은정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입가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은정의 눈매가 차가웠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아. 하지만 너처럼, 너처럼 위선적이지는 않아. 네 옆에서, 네 노리개로 사느니 나는 그냥 죽어버릴래.”
죽어? 죽어버리겠다고? 내 옆에서, 예전처럼 나와 친구가 되는 것보다는 죽는 게 낫겠다고?
계단을 서너 개씩 마구 뛰어올라가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손끝이 떨렸다. 나한테는 네가 전부인데, 내가 필요 없다고?
“그래? 나보다 이런 것들이 더 소중했다는 말이지? 이것들만 있으면 너한테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말이지?”
창틀에 얹은 책을 바깥쪽으로 천천히 밀었다. 은정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나는 창 밖으로 한국사를 집어던졌다.
책을 힘껏 던졌을 때 공중에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덤벼드는 은정의 몸을 나는 비호처럼 비켜섰다.
내가 막았던 허공이 열리는 듯하다가 그 애로 가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잠깐이었다. 창밖으로 두 손을 뻗는 그 애의 몸을 나는 힘껏 밀어버렸다.
창틀에 매달려 버둥거리던 작은 몸뚱이는 아래로 손을 뻗치며 사라졌다. 그 위로 벽돌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내가 건너편 산을 눈을 부릅뜨고 응시할 동안 다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학교는 조용했다.
아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무섭지도 않았다. 완전한 공허였다.
학교는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운동장 가에 한 줄로 늘어진 이태리 포플러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았다.
학교가 보이는 길을 다 벗어나 강가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훅 터지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아주 이상한, 낯선 소음처럼 들렸다. 모래가 들어간 바람 탓인지도 몰랐다.
마을 뒷산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쩡쩡 들렸다.
혼자가 되어버린 것은 나였다.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졸업앨범에 내 이름과 사진이 있어도 나는 언제나 익명의 존재였다.
은정의 죽음은 사고사였다. 수업시간에 교사에게 폭행을 당한 여학생이 바로 그날 교정에서 자살했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우리 반 모두 그 날 가정시간의 일을 침묵했다. 국사선생은 그 학기를 넘기지 못하고 전근을 갔다. 추락현장에 누군가 국사선생의 이름이 적힌 책을 발견했다. 피가 묻어 있는 그 책은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쓰레기장에서 불태워졌다.
은정이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 애와 단 둘이 되었다.
언제나 내 곁에 은정이 있다. 눈 오는 날 유리창 너머로 나를 들여다본다. 도서관 창가에 앉아서 책장을 넘기고 있다. 박물관 유리 너머로 백제와당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반딧불이 날 때면 내 옆에 앉아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은정이 없는 나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가엾은 소아마비 아이였지만 나는 언제나 혼자이지 않았다. 내 옆에는 언제나 그 애가 있다. 결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바란 대로. 평생. 그 애 말고는 아무도 내 옆에 있을 수 없다.
“내가 가고 싶다고 했잖아. 거기로 가자.”
겨우내 망해사를 찾아가는 꿈을 꾸었다. 솔숲 사이로 난 낮은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마당 끝이 바다로 이어진다는 절이었다. 의자왕 때 처음 지어진 절이라고 했다. 북망에서 돌아오지 못한 왕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바다를 가득 채워 넘실거리는 곳. 바다로 지는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는 절. 그 바다를 보고 싶다고 은정이 졸랐다. 보여줄게. 기다려. 나는 은정에게 말했다.
어둠은 낮보다 익숙하다. 밝은 것은 언제나 공포다. 옆으로 쓰러지는 소나무 그림자들을 헤치고 나는 걷는다. 키 큰 그림자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망해사에 들어섰을 때 크지 않은 작은 전각 둘과 넓은 마당이 보였다. 마당으로 내려서는 길은 넓적한 돌판들이 깔려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은 절이다. 요사채에 불이 밝혀져 있다. 마당에는 인적이 없다. 마당 끝 바다로 떨어지는 곳에 범종각이 앞을 막았다.
안전대 앞에 선다. 나는 가슴을 크게 올리며 숨을 쉰다. 여기에 왔어 은정아. 네가 오고 싶어 한 곳. 나를 끌고 왔어 네가.
어둠 속에서도 은정의 얼굴이 잡힐 듯 보인다. 은정은 웃고 있다.
“봐. 너는 반딧불은 바다로 가지 못한다고 했지만 나는 왔잖아. 이 바다 끝에 장공이 판 황천이 흘러. 나는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어. 더는 네가 필요 없어.”
이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지. 그때 나는 그 말에 무너졌지만 이제는 괜찮아. 내가 네 곁에 갈 테니까.
나는 은정을 본다. 은정의 눈가로 무언가 핑 날아올랐다. 어딘가로 가기엔 좋은 밤이다.
은정의 손을 잡았다. 내 손바닥에 물기가 번진다. 내가 서 있는 마당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온다. 나는 휘청거리지 않는다.
오래 기다렸어. 너를 기다리느라 나는 좀 힘이 들었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를 떠미는 건 네가 아니야.
얼굴을 덮치는 파도가 차갑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지만 나는 발버둥을 치지도 않는다. 곧 어둠 속에서 긴 팔이 솟아나와 나를 잡아줄 것이다. 어둠은 따뜻하다.
괜찮아. 나쁘지 않아. 이제 너는 혼자일 수 있으니까. 도망칠 수 있으니까.
미소가 지어질 것 같다. 이제 나는 자유다. 괜찮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