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리 유씨 -
“어지간허먼 땅이나 좀 풀리먼 나올 것이지, 곡괭이가 들어가긴 허나? 날마두 저늠의 호두만 쳐다보다 보니 즤 몸띵이가 그냥 저 나무토막인중 아는 모냥이여. 아무리 즤 팔자대루 산다구 혀두, 그릏기 몸띵이 구박허다가 아차 헐 적에는 다 쇠용 읎어. 안 그려두 산동리 묫자리는 갈라구 허는 이는 읎어도 오라는 문서는 다 나와 있응게.”
혀를 쯧쯧 차는 소리에 잔뜩 시큰거리던 허리를 겨우 펴고 고개를 들었다. 유씨는 힘껏 내려치던 곡괭이를 잠시 놓고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아침 내내 퍼 올려 북을 돋은 흙더미 위에서 안뜰말 지서기가 혀를 차고 고개를 짯짯 젓고 있었다. 둘둘 말고 덮은 옷깃 사이로 평소에 쨍하던 가는 목소리가 웅얼웅얼하였다.
빵빵하게 부풀은 요란한 등산복을 입고 목도리로 친친 동인 것도 모자라 목덜미까지 내려덮은 모자로 단단히 중무장을 한 것이 동네 뒷산이 아니라 히말라야 등반이라도 나서는 차림이었다.
어깨에 힘을 주고 제 딴에는 잔뜩 위엄을 부리며 턱을 내밀고 혀를 차고는 있으나 저 똥실한 몸이 얼음이 서걱서걱 박힌 두덕 흙을 잘못 밟아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산 아래 돌말 면사무소까지 직행으로 굴러가겠다고 생각하니 유씨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일찍 나오셨네유?”
가는 말 길어 보았자 오는 말 건질 것 없게 하는 사람이긴 했다. 그래도 아래윗집 조석 간에 인사하며 오가는 얼굴도 아니면서 늘 보는 것처럼 유씨는 말 수가 적었다.
“뭐랴?”
턱 끝으로 묻는 지서기의 눈길을 따라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를 휘 둘러보았다. 아침 내 쳐박혀 있었는데 이제 겨우 못 그림만 잡혔다.
“농막이서 쓸 물이 필요헐 거 같어서유.”
취수못으로 쓰려고 봄 일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파는 것이었다.
비탈길을 한참 내려와야 고인 물이 있는 개울이었다. 호스로 물을 끌어 올려 가둬 놓으면 방제할 때 힘들게 물통을 지고 오르내리지 않아도 된다. 물길이 멀어 급하면 펌프를 쓰기도 하였으나 소아마비로 다리가 온전치 않은 유씨에겐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물만 충분하면 노는 밭두렁에 무엇이라도 알뜰하게 심어 가꿀 수도 있으니 이래저래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내일부터 사나흘은 착실히 큰 눈이 온다는 예보에 서둘러 구덩이라도 만들어 놓으려고 아침부터 혼자 일을 벌이고 있는 참이었다. 그러나 언 땅은 도무지 완강하여 서너 번을 연달아 곡괭이를 내리찍어도 내어주는 흙은 보잘 것이 없었다. 지서기 말대로 이제 바윗등 같은 겨울 땅과 씨름하기는 녹록치 않은 나이기는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연 입김이 절로 나왔다. 귓불이 얼얼하다 못해 칼로 에이는 것 같은 찬 공기 속에서도 목덜미를 감은 때 절은 수건에는 땀이 홈빡 배었다. 유씨는 수건을 벗어 팔뚝에 올라붙은 흙덩이를 쳐 내렸다.
“자네 부지런헌 거야 삼동이 다 아넌 일이지만 대한이 초상 치르는 날언 뜨끈헌 아랫목이서 등짝 지질 줄도 알으야지. 남보덤 빨리 갈라구 그릏키 염라대왕 헌티 싸바싸바 안 혀두 그 냥반 장부는 오이상이 읎으니께.”
딴은 걱정이라고 해 주는 소리겠지만 말끝마다 걸고 넘어지는 소리가 돌말밉상면서기 아니랄까 싶었다. 아버지뻘이나 다름없는 양반한테도 반토막말로 대거리하다 단장으로 뒤통수를 깨진 것이 해전(年前)이었다더니 하물며 열 살이나 아래인 유씨한테 가르고 삼갈 것은 애초에 없을 위인이긴 했다. 제 몸과 돈을 쓰는 것이라면 죽었다 깨나도 앞서서 할 일이 없는 인사가 어찌 이 아침에 수릿재 산밭까지 허위허위 올라와 흰소리를 하고 있는지 뻔히 짐작이 되는 바가 없지 않아 유씨는 입을 꾹 다물었다.
퍼 올린 흙을 삽으로 다시 다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지서기가 킁킁 하더니 유씨의 삽이 지나간 자리를 냉큼 따라가 발로 꼭꼭 밟아 다졌다. 서너 번 삽 자리를 따라가던 지서기가 유씨가 허리를 펴자 얼른 물러서더니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더 생색을 내게 해주면 좋으련만 눈치 없는 유씨가 오래 할 모양은 아니다. 하기야 눈치를 바랄 사람한테 바래야지, 소처럼 미련해터진 유씨니 이 한파 속에 얼어붙은 땅을 파고 앉아 있을 일이었다.
빈 말로 라도 어째 공무에 바쁘신 어른이 여기까지 행차하셨냐고 혼곤한 인사가 없는지, 속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동네에 난 소문은 다 헛말이었다. 속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나 싸가지는 영 말아먹은 놈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며 지서기는 고개를 쌀쌀 흔들었다.
마주 선 이가 뭐라 하거나 말거나 별다른 대꾸도 없이 묵묵하게 제 일을 하는 유씨의 기우뚱한 몸짓을 훔쳐보다 혼자 떠들기가 무안해진 지서기가 산밭 아래로 흐르는 좁고 험한 비탈길을 내려다보며 한숨이 늘어졌다.
“하이구. 그려두 수랫재에 올라봉게 눈 아래로 짝 펼쳐지는 것이 제법 산수경계가 나쁘진 않네야. 어려서는 노상 핵교 마치구 돌말 배이장이랑 저기 김초시네 모잇등 타고 노는 것이 일이었는디. 그때는 순전히 근본두 읎는 잡목림이었는디 어느 세월에 호두나무가 제법 잘 되얐네.”
지서기 말마따나 십년 전만 해도 수릿재 비탈밭은 아무도 탐내지 않는 돌산, 돌밭이었다. 아니 말이 밭이지 흙 반 자갈 반에 불쏘시개로나 쓰일 잡목만 드문드문 엉키어 무성한 곳이었다. 유씨가 산 임자를 찾아가 꼬기꼬기 접힌 돈 뭉치를 내놓고 비탈밭을 내어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수릿재 위 아랫 마을인 외동리나 돌말이나 다 어이없어 하였다. 남들 세 끼 먹을 때 두 끼도 옳게 못 챙겨먹고 남들 솜옷 입을 때 베옷도 제대로 못 걸치며 총각으로 늙어가던 유씨였다. 가난에 포한이 져서 버려진 자갈밭이라도 제 이름을 짓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애틋하나 수릿재는 도무지 무엇을 심어 거둘만한 곳이 아니었다. 넓은 평야가 펼쳐진 돌말을 지나 외동리 들어가는 길목으로 급하게 골짝을 이루는 곳이 수릿재였다. 장마철에는 좁은 산골짝을 따라 제법 물길이 좋았지만 경사가 급하고 바위가 많은 험한 곳이라 도무지 만만한 골짝이 아니었다. 물을 지척에 두고도 고작해야 다락논이었고 그나마 여름이 지나고 나면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인 마른 시내여서 손을 타지 않는 밭작물이나 조금씩 부쳐 먹을 뿐이었다. 들판 너른 돌말은 그렇다 치고 외동리나 그 안쪽 마을 내동리도 거둘 손이 없어 그렇지 농지가 부족한 곳도 아니어서 그 비탈진 산밭을 굳이 욕심낼 사람은 없었다.
물려받은 산이어도 하릴없이 버려둔 자갈 산이어서 그게 제 땅인 줄 알뜰한 생각도 없이 살았을 산 임자는 이게 웬 횡재냐 싶어 두 말도 아니 하고 유씨에게 넘겼다. 인정 있는 마을 사람 몇몇은 유씨가 지게를 지고 절룩이며 비탈 밭을 오르내리는 걸 보고 혀를 차며 땅문서를 넘긴 이를 좋게 보지 못할 정도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늙은 총각 유씨가 딱 그 집 이불 호청만한 방구석을 또한 벗어나지 못하며 반평생을 누워 있는 아비와 사는 모양이 딱하기도 하였고, 그렇게라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나 싶어 입찬 소리로 막지도 못하였다.
남들이 저를 뭐라거나 말거나 묵묵히 그 산밭을 오르내리며 몇 해를 번듯한 농기구 하나 없이(하기야 그런 것을 갖다 댈 만한 땅도 아니었지만) 지게 하나로 이고지고 손바닥만한 산밭을 일구더니 해마다 조금씩 들락거리는 평수가 넓어져갔다. 여름 겨울 없이 온 몸을 부서져라 절룩이며 남의 집 허드렛일부터 읍내 장날까지 찾아다니며 손바닥이 황소 발굽이 되도록 일한 덕분이었다.
조금씩 넓어지는 땅을 따라 심은 호두나무 묘목이 자라고 십 년이 지나 드디어 호두를 내게 된지도 다시 두 해를 넘겨 유씨는 늦장가를 들었다. 쉰을 넘긴지도 벌써 두 해였다.
제 나이 반도 안 되는 어린 신부는 덩치도 작고 몸도 약해서 농삿일에 별 반 도움은 못 되었다. 그래도 난생 처음 여자 손으로 빨래한 옷을 입고 끼니마다 연기를 내는 유씨네 부엌 연통을 보며 고생 끝에 이제 비로소 낙이 오는가보다며 마을 사람들은 제 일처럼 기뻐하였다. 병아리처럼 꼬물거리는 어린 것을 들쳐 업은, 눈이 머루처럼 새카만 색시와 나란히 읍내를 가는 유씨네를 보면 누구라도 발걸음을 멈추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