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왜 정의는 언제나 배반당하는가.
대선이 가까와오던 무렵이던가.
이 영화가 크게 흥행했다.
김연아를 좋아하는 휴 잭맨이 직접 내한해서 영화 홍보 기자회견에서 김연아 응원을 하면서 더 호감을 불러서 히트한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 영화 아니라도 워낙 게으르다보니 내가 영화 자체를 잘 안보고 살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게시판에서 우리 대선과 연결지어 얘기하면서 민중의 침묵에 대해서 분노하던 말들을 기억한다.
그때 사람들이 하나씩만 나왔으면, 그 젊은 청년들이 속수무책으로 맨손으로 싸우다 죽어갈 때에 누군가 창문을 열고 함께 소리라도 지르고 누군가 그들에게 돌멩이라도 갖다 주었더라면, 누군가 그들이 쫓길 때에 문을 열어주고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더라면.
혁명을 이야기할때는 모든 파리 시민들이 흥분해서 노래하며 동지가 되더니 그들이 바리케이트 앞에 맨 몸으로 서 있을 때 왜 그 많던 시민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침묵했던가. 나열한 시체들 옆에서 수군수군 소문처럼 말하다 다시 또 입을 다물었는가.
혁명은 실패했다.
무고한 젊은이들이 피를 쏟으며 죽어간 자리에 남은 것은 차디찬 보도블럭을 맴도는 헛된 바람 뿐이다.
뒤늦게 혼자 영화를 보며 운다.
내일이 오리라고, 우리의 혁명은 성공할 것이라고, 우리는 기필코 자유를 얻으리라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지만 그들은 모두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엾은 창녀와 꿈을 꾸던 청년과 고아와 늙은 탈주범과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누구의 오라비, 아들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죽어서나 가능한 자유일 뿐이었다. 그들이 목청껏 부르던 그 내일은 오지 않았다...
너희들의 침묵에 나는 운다.
나의 비겁한 외면에 가슴을 치며 운다.
우리는 죽어서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밟히고 찢기고 모욕당하다 기어이 노예가 되어 죽어서야 웃을 수 있는 것인가.
왜 우리 역사의 정의는 언제나 불의에 배반당했는가.
그것은 침묵하고 외면한 당신들, 우리 모두의 비겁 때문이다.
우리의 침묵이 그들의 득세를 만들었고 그들의 불의가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겁먹은 짐승이 된 우리가, 짐승들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렇지. 물론 자기 것을 뺏으려는 자에게 누구나 일단 반항하지. 하지만 그 힘의 차이가 압도적일 경우, 그래서 모두 잃더라도 맞서느냐 아니면 그 힘에 복종하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그런 결정적 선택의 순간이 오게 되면, 결국 본질적 기질이 드러나게 된다고. 그때 우의 사고 회로는 자기를 압도하는 힘에게 복종하고 바짝 엎드리는 게, 자기가 더 힘이 세면 남을 지배하는 게 당연하듯, 받아들여야 하는 이치라고 여기기 십상이라고. 자기가 약하면 복종하는 수밖에 도리 없다고 받아들이는 게 우의 인식체계라는 거지. 동물하고 똑같아. 붙어봐서 안 되면 바로 꼬리 내리고 슬슬 기는 거지.아예 도망치거나.
- 김어준 <닥치고 정치> p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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