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각황전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졌는데 임진왜란으로전화(戰靴)를 겪으면서 전소되었습니다. 인조 때 다시 짓고 여기 있던 원래 3층구조의 장륙전은 숙종임금에 이르러 각황전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지어졌습니다.
원래 장륙전에는 사방 벽면에 화엄경 석각이 가득했다 합니다.
대단한 장관이었겠어요.
각황전을 딱 보고 처음 느낀 것은 말 그대로 "압도감"이었습니다.
어깨가 딱 벌어진 든든한 체구에, 내려오던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드높은 돌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표정에 찬탄이 절로 나옵니다.
장중하고나... 장중하고 엄숙하고나...
속되지 않고 듬직한 무게감, 단청을 입히지 않고 화장기 없는 얼굴처럼 담백하게 나앉은 자신감이 당당합니다.
각황전을 한번 돌아볼까요?
비스듬히 바라보는 각황전은 살짝 올라간 지붕 끝 선이 한결 부드럽고 낙낙하게 느껴지는데
정면에서 바라보면 사뭇 남성적인 기운이 넘칩니다.
그런데 보세요.
각황전의 규모로 보아 저 처마선을 일자(一字)로 잘라나갔다면 굉장히 딱딱하고 둔해보였을 것 같은데 도련처럼 부드럽게 흘러 처맛선을 살짝 들어올리니, 장중하고도 여유로운 물결처럼 선이 흐릅니다.
우리 옛집의 아름다움을 또 이렇게 봅니다.
어느 전각인지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각황전 왼쪽으로 내려앉은 건물 처마에서 본 수막새입니다.
천진한 아이의 표정으로 한껏 행복한 얼굴에 바라보던 사람들도 덩달아 따라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도 여유를 찾고 새길 줄 알았던 멋이 참으로 흥겹지 않습니까?
부처님의 덕을 따라 기리고 피안을 향했던 불심의 행복이 느껴지네요.
담백하고 장중한 화엄사.
지금까지 다녀본 절 중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장중했던 본전이었습니다.
일본 청수사에 갔을 때 화엄사와 비교해서 두 나라 가람 건축의 차이와 절집에서 드러나는 두 나라의 문화의 차이를 생각했어요. 문살에 꽃치장도, 화려한 단청이 없어도 이미 대웅전의 웅장하고 기품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움의 궁극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나요?
억지로 꾸미지 않고 아름드리 나무를 그대로 세운 멋이, 치장보다는 여유있는 격조가 느껴집니다.
처마골도 그렇습니다.
삐뚤빼뚤한 나무를 그대로 써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듯한 어린 기둥의 도열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몰래 살짝 찍어본 안쪽입니다.
천장이 굉장히 높은데다 장중한 기둥에 가려, 닫집도 불단도 보이지 않네요.
줌으로 당긴 안쪽 꽃천장입니다.
내부는 단청을 입혔었군요. 목재부식을 생각하면 당연히 입혔겠지요.
혹시나 화엄사를 찾아갈 분들을 위한 팁.
화엄사 앞에 "백화회관"이라는 식당이 있어요.
정식을 시키면 저렇게 어마무지한 상이 나옵니다.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야 들리는 상입니다.
몇 년 전이긴 한데 일인분 만원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저기 나오는 산나물은 모두 지리산에서 나오는 그대로의 우리 산나물이랍니다. ^^
서른 세 가지 음식이라는데 세어보진 않아서 넘치는지 모자라는 지 모르겠어요. 모자라진 않을 거예요.
셋이 시켰는데 배 터지도록 먹고도 다 못먹어서 일어서기가 몹시 억울했어요 ^^;
다녀본 여행지 밥 중 단연 최고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