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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가는 길-3 추모의 집.

소금눈물 2013. 5. 23. 16:05

 

 

사법시험 준비시절 공부하셨다는 마옥당 터가 멀리 보입니다.

이 작은 마을 곳곳마다 두 분이 들려주신 추억이 가득합니다.

둑방길을 따라 데이트를 하던 처녀총각이 결혼을 하셨지요.

초옥을 짓고 공부하던 남편에게, 사법시험 합격의 기쁜 소식을 들고 달려갔던 여사님.

젊은 부부의 행복했던 신혼시절이 눈부신 오월 바람에 잡힐 듯이 보입니다.

 

연지에서 쉴만큼 쉬기도 했고, 첨맘님 사인회도 있다고 하고 이희호여사님께서도 오신다니 일어나봐야겠습니다.

 

 

마을 앞에 잔치가 벌어졌네요.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하나씩 받아가고 있는 노란 떡.

 

 

 

고맙습니다.

염치없이 저도 줄을 서서 한 쪽 얻어먹었습니다.

참 맛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추모의 집 앞에 어린이들 그림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네요.

정말 잘 그렸지요?

한눈에 봐도 주인공들이 누군지 알 수 있을 만큼 인물 묘사도 훌륭하고 노란풍선, 새끼오리들, 날아가는 민들레.. 봉하마을의 상징물도 모두 들어 있습니다. 수채물감을 쓰는 기법도 능숙해보여요 ^^

 

야 참 잘 그렸다. 좋은 작품이다.

어린 친구의 그림 앞에서 한참 칭찬을 하고 섰습니다.

 

 

2002년 가을, 겨울...

 

"고모 생애 가장 행복하고 보람찼던 나날이었다. 언론에서 뭐라던 우리는 한번도 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어.

우리는 분명히 이길 것이었거든."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낸 저금통도 저기 어디쯤 있겠지요.

행복했어요...

지금 저 사진을 보고 있는 제 눈가는 젖어들고 있지만

후보 선택 전화를 받으려고 퇴근하자마자 뛰어가던 골목길도, 거래처며 친구들이며, 지지를 부탁하며 쉴새 없이 돌려대던 전화기의 열기도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직도 제 마음은 이 자리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4년이나 흘렀다고, 이제 그만 하고 일어나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그게  우리가 정말 꿈꾸던 세상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훌륭하고 야무진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만 저는 아직 잘 되지 않아요. 아직 잘 안되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이제 평안하시겠지요...

 

 

생각하면 하마 꿈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아름다웠던 봄날이 우리에게 정말 있기는 했던 것일까.

우리가 너무 주제에 버거운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직도 들어서기가 힘이 들어요.

하나 하나 짚어가며 "추억"을 돌아보는 일은 제겐 안 되는 일이예요.

 

 

돌덩이가 되어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는 마음을 추스리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벽면 가득 그리움과 회한이 담쟁이가 되어 덮여 있네요.

 

마을은 손님들로 몹시 붐빕니다.

다행히 날이 아주 덥지는 않고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 걷기는 괜찮은데 햇살은 따갑네요.

단지우유가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답니다.

 

 

작년에는 없던 봉하마을 "신상"입니다.

쌀 아이스크림이랍니다.

부드럽고 찰진 느낌에 맛은 미싯가루? 혹은 누룽지? 구수한 쌀맛이 납니다.

쌀로도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니 신기합니다.

맛이 썩 괜찮습니다.

 

 

 오늘은 정토원은 포기하고 두 분 여사님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기는 하지만 직접 뵐 수 있는 좋은 자리를 포기할 수 없어 뙤약볕 아래서 꼼짝을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