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규장각

복권된 중전

소금눈물 2011. 11. 7. 15:12



전하께서 이곳에 납시었다 들었네.
계시는가?



헌데 어쩐지 상선의 말끝이 흐려집니다.
우물쭈물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당황한 것도 같구요.
그런데 뜻밖의 목소리가 저하를 가로막습니다.



전하께선 안에 계시네!

어찌된 일일까요.
중궁전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의 몸으로 마마께서 어찌이곳에 계신다는 말씀인가요.



중전마마!



오랫만입니다 세손.

중궁전에 갇혀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닐것이라는 중전아니십니까.
헌데 왜 대전에서 나오시는 겁니까?

지금 이곳에서 무얼하고 계신 것입니까?



무얼하고 있냐니요.

이전과 다름없이, 아니 이전보다 더 당당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세손의 앞을 막고 있는 중전마마.
저하는 어이가
없습니다
.




소손, 중전마마께서 왜 대전에 납시었는지 그 까닭을 묻는 것입니다.



이상한 걸 물으시는군요 세손.
대전에 들렀다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상전하를 뵙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보아하니 세손도 전하를 뵈러 온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성심이 많이 어지러우니 오늘은 이만 돌아갔다 다음에 다시 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허!
대전에서 물러나라...!



송구하오나 그것은 마마께서 나설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마께선 전하의 어명을 잊으셨습니까.



어떤 죄를 짓고 어떤 벌을 받으셨는지 잊으셨냐 말입니다.
처소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대전에 납시셔선 안될 것입니다.



소손 또 한번 이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소손 그때는 결단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헌데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저하를 보고 있는 중전마마.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요.
아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중전께서 저하 앞에서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걸까요.



전하께 뵙기를 청한다고 아뢰게.
무엇하는가. 고하라지 않는가!

더 이상 중전마마를 상대하지 않고 직접 전하를 뵈어야겠습니다.



그래, 나를 무시하겠다, 오냐 그래 해보거라.
천둥벌거숭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디 한번 네가 전하를 뵐 수 있나 내 지켜보리라.




전하 세손저하 납시어계십니다.



헌데 참말로 뜻밖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대전에서, 지금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니 다음에 들르라는 옥음이 들렸습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시다니.
급한 일이라 여쭈었거늘 얼굴도 보지 않고 내치시다니!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
전하께서 영영 네 곁에서 너를 감싸안고 지켜주실 줄 알았더냐.
그분이 지금 어떤 지경인지 너는 꿈에도 모를 것이야.
어디 한번 마음대로 날뛰어보거라.
내 앞에서 목숨을 구걸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하오나 전하!



그것 보십시오.
내 뭐라 말했습니까 세손.
오늘은 이만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옥체가 불편한 것은 아니니 너무 심려마세요.
처소로 돌아가 기다리면 기별을 주실 겁니다.




옥체가 불편하신 것을 저하는 모르고 중전은 안다...
이 중전을 만나시고 저하는 보지 않으신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불현듯 앞을 막는 이 불안.




설마 전하께서 세손을 영영 아니 보시기야 하겠습니까.



이 무슨 흉측한 망언인가.
영영 아니보다니!
무슨 뜻인지를 알고 뱉으시는 건가.




충격을 받은 저하의 모습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중전마마.



이럴 수가...
전하께서 어찌 이럴 수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왜 전하의 마음이 변해버렸는지, 이것이 정말 무슨 뜻인지, 아니 어떤 시작일까 저하는 눈앞에서 벌어진 이 일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