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 정선
언젠가 정선의 <인왕제색도>의 비밀을 풀어냈는데, 그는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약간 홍조를 띤 환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호암미술관에서 만든 복제품을 집에 걸어두었는데, 그림이 너무 무겁고 침통하여 오래 두고 볼 수 없어서 며칠 만에 말아서 거두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더니 훗날 그 비장감이 도는 암울한 분위기가 어디에 연유한 것인지를 풀어냈다. 그는 이 그림에 그린 날을 이례적으로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것에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미 윤월 하완(辛未閏月下浣), 즉 1751년 윤5월 하순이라고 써놓았는데 그는 이 시기의 날씨를 <승정원일기>에서 확인해보았다. 그 밖에 정선의 평생 절친이었던 시인 이병연(李秉淵)이 바로 그해 그달 29일에 타계했으며 또 이 인왕산 그림에 본래 없던 폭포가 세 군데나 있는 것 등에서 무슨 영감이 떠올랐던 것이다.
더구나 이 그림에 그려진 집이 바로 이병연의 집일 것이라고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실장이 추측해놓은 터였다. <승정원일기>에는 윤5월 초하루부터 18일까지 2,3일 간격을 두고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였으며 그러다가 19일부터 25일 아침까지 이레 동안 지루한 장맛비가 계속 내리더니 25일 오후가 되어서야 비가 완전히 개었다고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오주석은 <인왕제색도>가 바로 그날 오후에 그린 것임을 증명해냈던 것이다. 왜 폭포가 세 군데나 있는지도 알게 되었으며 사경을 헤매는 친구가 이처럼 날씨가 개이듯 쾌유하기를 비는 마음에서 그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친구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쾌유하기 어려웠음을 정선은 또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이 왜 비장하고 침통한 분위기를 무겁게 띠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명화 중의 명화인 <인왕제색도>의 비밀을 확연히 풀어낸 것이다.
오주석 지음. <솔>출판사 펴냄. <그림 속에 놀다> 중 오주석을 기리는 강우방의 헌사에서.
세상 모든 만물, 특히나 예술이 그러하듯이 진실로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통감했다.
사나흘 내리 퍼붓던 비가 막 그치고 아직 구름이 인왕산 자락 너울너울 감싸고 가라앉은 전경을 바라보며 그 산자락 아래 지붕만 얼핏 드러낸 벗의 집을 그리는 모습이 나는 이처럼 절절한 기원임을 몰랐다. 어렸을 때, 마을 가장 높은 집이었던 우리집 마당에서, 퍼붓던 장마비가 물러나며 남기고 간 그 눅눅하고도 청명한 기운이 연상되어 그저 흐뭇하기만 했던 것이다. '비장하고 침통한' 그림이라니... 해태눈깔인 내 눈에는 어림없던 관상(觀狀)이다. 젠장...
자신의 심미안을 확인하기 위해 <승정원일기>의 날씨를 날짜별로, 시간대 별로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었을 지은이(오주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새삼 그가 남기고 간 자리가 허전하고 안타깝다. 그림을 무작정 좋아하면서, 특히나 우리 그림을 볼 때 안목이 짧고 부족해서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그의 책들을 통해서 다시 알고 감동했던 적이 얼마였던가. 그가 살아 있더라면, 그리고 그가 꿈꾸었던 <우리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그의 뜻대로 온전히 우리가 다 누릴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복이 없는 후손들의 안타까움보다, 그 아름다움과 깊이를 제대로 전해줄 이를 놓친 선대의 우리 예술가들이 더 안타까워할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