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규장각

36회. 불안한 얼굴들

소금눈물 2011. 11. 7. 15:10



이제 겨우 세손이 역당들의 위협에서 벗어났다지만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
언제 바뀔지 모르는 전하의 마음,
기세는 꺾였다 하나 중궁전과 옹주의 세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잘라내야지요. 암요.
하물며 다모라니, 기껏 다모아이 하나로 그 전정을 막을 수 없는 없겠지요.



동무로만 여겼더니, 고맙고 착한 아이로만 여겼더니
어느새 그 마음이 사사로운 정이었구나.
느닷없는 이별이 아쉽고 서운터니
반죽음이 되어 나타난 송연이를 보고 이처럼 무너지다니...
감출 수 없습니다 어마마마, 아니라고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음을 드러내면 그 아이는 살 수 없겠지요.
감추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보이지 않겠습니다.
허니 그 아이만은 다치지 말아주세요.
고작 그 아이 하나를 지키지도 못하는 이가 어찌 군주가 될 수 있다 하십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저하의 정인이 누구인지를 진즉에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한번도 보인 적 없는 따뜻한 웃음, 다정한 말소리...
제겐 좋은 얼굴만 보이시지만 그 아이에겐 힘들고 고단한 마음까지 의지하고 계시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습니다.
서운했습니다. 감추려 했지만 그 아이가 미웠습니다.
하오니 저하, 용서를 구하실 것은 저하가 아니라 신첩입니다.
미워하고 다스리지 못한 못난 부덕을 탓하십시오.
저 역시 어리석고 못난 지어미의 마음에 불과했습니다.




그럴 리 없다.
죽을 때까지 중궁전 밖을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한다 했다.
아바마마의 불같은 성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 요망한 중전이 무슨 짓을 했기에 그 분이 용서를 하셨다는 말인가.
이제 코 앞인데, 다 잡은 권력을 놓칠 수 없다.
싸움에서 밀린다는 것은 곧 죽음, 돌아설 수 없다.
헌데 무슨 일인가.
김귀주가 궐로 돌아오다니 도대체 이 무슨 말인가.



어찜이냐.
국본을 암살하려던 김귀주를 풀어주시다니.
한밤중에 승지를 불러 아무도 몰래 윤지를 내리시고 그 일을 비밀에 부치셨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가.
내 목숨을 노리던 역당들의 죄를 덮으시고 나를 달래실 때에
미안하다, 죽을 때까지 미안하다 하신 말씀은 거짓이었던가.
모든 것은 이전으로 돌아갔다.
내게 정사를 맡기시고는 뒤로는 중전을 불러 내 앞을 막으시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할 것인가.




김귀주의 귀환.
이는 곧 중전의 부활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머니도 모르게 그자가 돌아올 수가 있는가.
그것도 전하의 소명이라니.
그러면 어찌 되는가.
날마다 커가는 동궁전의 세력도 감당하기 어렵거늘 거기에 중전까지.
중전이 돌아온다면 권력 앞에서 모래알 같은 노론이 중전앞으로 몰릴 것은 자명하다.
이판도 동궁전으로 돌아선 이 마당에 내가 선택할 길은 무엇인가.
답답하도다.
캄캄하도다.



도대체 이 며칠,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김귀주를 풀어주었다니. 내 손으로 윤지를 내렸다니.
기억에 없다. 무엇에 홀린 듯 어지럽기만 하다.
내가 미쳤던가,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던가.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진실은 내 손으로 그 자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내가 죽을 날이 가까왔구나.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짓을 할 리가 없다.
아직 어린 세손, 그 자리가 아직도 든든하지 못한데
나 마저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하고 이리 정신을 놓아버렸으니
어찌할꼬. 이를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