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3주기 봉하가는 길> -2
저희 가족들처럼, 전국 각지에서 이 더운 날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무엇을 보겠다고, 무슨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모여든 것일까요?
한마디라도 놓칠까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마음들.
그 마음들의 뿌리를 바닥돌에 새겨진 문구에서 봅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마을로 들어섰을 때 일행 중에 할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처음 오는 둘째 조카에게 (자주 등장한 단지우유 동생) 여기가 사저, 저기가 손님들이 손나팔을 하고 부르면 나와서 인사하시던 곳,
저기가 서은이가 할아버지랑 자전거 타며 "쌩쌩~ 달리세요~" 했던 곳이라고 일일이 가르쳐 주는데
그걸 옆에서 들으시다가 사저가 어디냐고 물으시더군요.
저 집이라고 말씀드리니, "아이고 저 집이...저 작은 길갓집이...."
금새 눈물이 핑 도시면서 말씀을 못 이으셨어요.
유역까지 내내 같이 가는데 부엉이 바위가 어디냐 물어보셔서 가르쳐드리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시면서 차마 말씀을 못하시고
"여기를 보세요. 일일이 사람들이 다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새긴 곳이랍니다."
"알지 알어. 내 조카도 여기에 썼다우."
유역으로 들어서면서 저도 어느새 마음이 젖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하염없이 우시는 할머니를 뵈며 마음이 더 젖어들었습니다.
"너럭바위가 어디유?"
"저 쪽이예요."
젊은 사람들에 치여 앞으로 가지도 못하시길래 앞에 계셨던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앞자리로 옮겨드렸어요.
봉하에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어르신 너무 많이 우셔서 어젯밤 편히 주무셨을지 걱정이 되네요.
오늘 <봉하사진관>에서 어르신 사진 뵙고 반가웠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할머니.
그래도 대통령님...외롭지 않으시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미안해하며 찾아옵니다.
근엄한 현충원이 아니라, 나고 자란 고향마을에 마지막 잠자리를 정하셨을 때 그 뜻을 알면서도 한편 섭섭하고 혹시라도
궂은 손길을 탈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날마다 당신을 찾는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며 '우리대통령'이신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여전히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운 곳...
말을 잃고 가만히 눈길을 던집니다.
제 마음을 여러분 모두 잘 아시리라 생각해요.
사자바위의 위용.
몇 번을 와 봤어도 저기를 아직 못 가봤어요.
다음에는 꼭 사자바위까지 가봐야겠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 멎지 않는 봉하.
며칠 전에 다녀가신 이희호여사님의 꽃도 보이네요.
아마도 봉하에서 가장 인기좋은 곳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터님과 여러분들이 꾸며주신 노랑개비밭.
어제도 역시 인기 최고였습니다.
날도 더워지고 많은 손님들 사이에서 일행들도 다 흩어져버렸습니다.
처음 온 조카에게 어제부터 내내 너는 봉화산에 꼭 올라가야한다고 협박을 했었지요.
결국 그 녀석을 앞세워서 봉화산을 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부처님.
"이렇게 누워계시니까 세상이 이 모양이지요.
얼른 일어나세요!"
드디어 정토원에 다다랐습니다.
재작년, 작년 정토원 추모일은 발디딜틈이 없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한가하게 느껴질 지경이네요.
폭우 속에서 우산을 들고 있기 어려웠지요.
초파일이 가까워서 마당을 가득 수놓은 연등이 곱습니다.
녹음 속의 수광전이 아름답습니다.
정토원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는 묵묵히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고 우리들의 슬픔과 분노도 저 바위처럼 굳건하고...
"여기란다."
"예...."
그 날 그 아침, 무슨 마음으로 이 언덕을 오르셨을까.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당신의 집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직도 생각하면 피눈물이 흐릅니다.
사무치는 원한과 슬픔을 삼 년 내내 가슴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저 한 지도자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의 마음이 이럴 진대,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분들의 마음은 오죽하겠으며
가족들의 마음은...저 같은 사람은 감히 짐작조차 못하겠지만요...
죄송합니다. 이런 언급조차 입 밖으로 올릴 것이 아니겠지요.
길이 험해 이젠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네요.
눈길로 인사를 드리며, 녹지 않고 풀리지 않은 얼음칼 같은 마음도 그대로 이 곳에 내려꽂힌 채로
돌아섭니다.
권력이 이렇게 무섭고도 추악한 것인지,
야차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악한 심성이 무엇인지 아주 절절히, 뼈에 새기며 깨달은 세월이었습니다.
다들 건강히, 이외수 선생 말마따나 "존버"합시다!
그 날이 멀지 않으리라 다시 한번 굳게 마음 먹습니다.
또 길어졌네요.
다음엔 연지로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