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실종된 좌승지의 흔적을 여전히 찾을 수 없는 노론.
이틀이 흘렀습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그래도 강단이 있는 사람이니 쉽게 토설하지 않으리라 믿고 싶지만,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얇팍한 것인지를 아는 후겸.
불안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더 알수 없는 것은 세손쪽의 반응이지요.
분명히 김귀주는 세손의 손에 들어갔을 것인데, 그 침착하고 냉정한 세손이 어찌 감당하려고 이렇게 무지막지한 사고를 쳤을까요.
더군다나 이것은 짐작일 뿐, 물밑처럼 내내 고요한 동궁전쪽을 보자니 더 초조하기만 합니다.
아니, 세손이 데리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짐작도 못하는 다른 어떤 세력이 있다는 것일까요?
미칠듯이 초조한 옹주.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짐작도 못하고 그저 불안해하면서 이렇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려니 숨이 조여옵니다.
이럴 수가!!
감히 누가 조정의 실세 중의 실세 승지 정후겸의 집 앞에 금군을 두었을까요.
금군이라 하면 궁을 수비하는 군병인데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주상전하십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주상전하께서 어찌!!
이판의 집에도 깔렸습니다.
전하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중전이 하는 말이 내내 걸렸는데, 정말 정승지의 말대로 이게 무슨 꼬리가 잡히는 시작인지...
금군이 자신의 집을 지키고 서 있다는 건 어떤 혐의에 자신이 걸려들었다는 것이겠지요.
전하의 불같은 성정을 아는 이판, 얼어붙어버렸습니다.
이판과 대사헌, 대사간, 형판의 집까지 모조리 금군이 에워싸고 있답니다.
어명으로 움직이는 금군.
왜, 대체, 갑자기 전하는 이들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같이 노론의 중추세력들!
김귀주는 정말 모든 걸 다 불어버린 것일까요?
저자에서 똥장군을 지고 있던 홍국영을 뜻밖에도 궁에서 만났습니다.
금군을 대소신료의 집 앞에 배치한 것이 이 자랍니다.
거기다가 느물느물 거침없이 하는 말이, 무어라, 사냥이라!
손에 잡은 토끼가 산중의 다른 짐승들에 대해 많이도 알고 있더라!!
어째서 홍국영이 금군을 움직이게 되었을까요.
김귀주를 잡아 모든 것을 토설받았군요!!
세손의 손아귀에 있을 줄은 어렴풋이 짐작을 했지만 금군을 움직이는 어명을 갖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후겸.
청천벽력같은 소식입니다.
조정의 권신들은 정신없이 바빠집니다.
살기 위해서는 납작 엎드리고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여나 누구와 연관이 되었고 누구와 허튼 말이라도 주고받다 얽혀드는 일이 없도록 몸을 사립니다.
살아야 합니다.
살기 위해선 체면이고 의리고가 없습니다.
좌승지가 실종된 것도 벌써 사흘.
그러나 누구 하나 중궁전에 들어 일을 보고하고 위로하는 자가 없습니다.
보고는 커녕 불러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병이 있다, 집이 감시당하고 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자신을 피합니다.
수장인 자신이 부르고 있는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와야 할 인간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분노와 모멸감에 치를 떠는 중전마마.
하지만 이 움직임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제 살 곳을 먼저 찾기 마련이지요.
권력을 주고 돈을 퍼줄 때는 간이라도 빼어바칠듯 하던 인간들이, 자신과 연루되는 것이 위험해지자 모두 제 살 곳을 찾아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워섬기던 중전이 죽던 말던 아랑곳하지 않구요.
전하께서 뭔가를 안 것 같습니다.
김귀주가 실종되었고, 아무도 편전에 들이지를 않습니다.
중전과 그 사랑하는 따님, 옹주마저 들이지를 않습니다.
살아야지요.
살 길을 도모해야지요.
이번 일을 만든 것은 중전과 김귀주인데 모두 함께 죽을 수는 없지요.
김귀주를 잡고도 세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 일의 근본 배후를 찾는 것이다.
이 그물에 우리가 모두 걸려들 순 없다.-
후겸의 냉정한 말에 이판은 입을 다물지를 못합니다.
모두 죽을 수 없다.
살기 위해선- 그분을 쳐내야 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후겸.
하지만 이판은 그를 막지 못합니다.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마 입밖에 내지 못했던 말이었으니까요.
살기 위해서 중전을 버려야 할까요?
그러면 전하께서 살려주실까요?
세손의 목숨 뿐 아니라 캐고들면 임오년의 일도 결국 한 뿌리인데, 목숨은 커녕, 멸문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러도 찾아오지 않는 이들.
결국 중전이 몸을 옮깁니다.
허나, 자신을 보고 얼굴이 굳어진 승지를 보고 중전은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히 내 명을 거역하는 구나.
이럴 수는 없지, 너희가 나를 이렇게 만들 수는 없지.
하지만 날아드는 칼날 앞에서 우왕좌왕 살 길을 다투는 이들.
분열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