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그리스 비극 걸작선

소금눈물 2011. 12. 14. 20:14

아차! 책 순서를 잘못 샀다.

전에 한길사에서 나온 그리스비극(임철규지음)을 사놓고 한참 후회를 했다. 내가 읽고 싶었던 것은 '그리스 비극'자체였는데 그 책은 그리스비극에 대한 주해본이었기 때문이다. 원전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스비극의 평론을 읽자니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하던지. (제목을 왜 그리 달아서는 -_-;)

 

이 책을 보고나니 비로소 그 책을 다시 읽을 마음이 생겼다. 역시, 원 텍스트가 있어야 주해고 평론이고가 된다는 말이지.

그리스 비극... 수천 년을 거슬러와 현대의 인간들에게도 절절하게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 철학. 이미 모든 문학과 철학은 그리스시대에 완성되었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커다란 고통과 절망을 그 시대의 작가들은 이미 다 깨달았다. 오욕칠정, 모든 형태의 욕망과 슬픔의 감정을 부어넣은 캐릭터, 그 신화들을 바탕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장 잔인한 이야기들의 전형이다.

 

원전 비극을 읽다보니, 이 비극을 모티브로 2차창작으로 만났던 문학이나 미술상의 이야기들은 그 2차창작 작가들의 세계였을 뿐 원전의 슬픔과 고통을 다 가져오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예를 들어 메데이아 -.  내가 아는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분노의 여인 메데이아의 자녀살해가,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다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미술을 통해 만난 메데이아는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게 가장 잔인한 복수로 어린 자식들을 살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전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로 읽다보니, 연적 크레온을 살해하고 난 후, 적들이 자신과 어린 자식들을 잔인하게 죽일 것이 확실하자 그들로부터 '구하기 위해' 스스로 그  사랑하는 자식들을 죽인 것이었다. 적어도 모욕을 당한 후에 더 끔찍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게는 하지 않았으니. 불같은 성정의 그녀가 어린 아들들을 두고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눈물흘리는 장면에서는 나도 몰래 눈물이 핑 돌았다.

 

고대 그리스문학을 가장 풍성케 한 3대 비극작가,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적인 작품을 두루 실었다. 맨 마지막에 실린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해피엔딩일수도 있는데 역시 감동은 비극에서 더 빛이 난다. 그 중 내게 더 큰 감동을 주었던 것은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트로이전쟁이 그리스 세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다시금 감탄을 한다. 현대의 모든 문학의 정수는 이 비극들을 모태로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감동적이다. 이 작품들 앞에서 우리가 말하는 어떤 형태의 비극도, 문학도 더 이상의 감동은 없을테니까.

 

얼른 임철규의 책을 읽어봐야지.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제목 : 그리스비극 걸작선

지은이 :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

옮긴이 : 천병희

펴낸 곳 :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