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중독
'머리가 나빠서' 읽은 책을 다시 처음처럼 읽으면서 신났던 책이다.
읽고나니 이게 또 얼떨떨한 미스테리물처럼 되어 이런 줄거리도 기억 못하는 내가 어이없다 -_-;
처음 시작할때는 아 이 여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딱 그런 마음이었다.
요즘 직장일도 심란하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때려치웠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곽에서 조용히 책이나 읽고 소일삼아 가벼운 번역을 하며 동네 도시락집에서 근근 버는 돈으로 생계를 겨우 이어가지만 그래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고 이따금 용돈을 모아 음반을 사며 이게 삶의 전부처럼 조용히 평화롭게 삶을 이어가는 여주인공이 꼭 내가 꿈꾸는 삶의 모양새였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아무에게도 넘치지 않게 사랑을 주지 않고 또 아무에게도 그런 사랑을 받지 않고.. 쌀쌀맞게도 보이고 음침하게도 보이지만 나름대로 자기 삶에 틀어박혀 혼자서 조용히 사는 사람. 이러면 된거지.
근데 왠걸?
읽다보니 그게 아니다.
제멋대로인 난봉꾼에다 '양떼들' 같은 여자들을 몇이나 거느리면서 그들 사이를 잘도 오가고 인기도 많은 배우에 약삭빠른 잡문을 써제끼며 나름 문명(文名)도 쌓고 아무 부족한 것 없이 완전히 자기중심대로 사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인 이츠지 고지로에게 매달려 떠나지도 못하고 상처를 받으면서 기꺼이 그 굴레에 매어드는 여자가 이해가 안 되었다. 사랑에 그처럼 초연하고 냉정해보이던 여주인공이 사실은 그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나쁜식으로든 남자의 사랑을 구걸하며 곁에서 머물기만 바라며 애면글면 살아왔다는 역설이었다.
냉정했던 전 남편, 첫상대였지만 또 그런 방식으로 버림받은 첫 남자친구, 그리고 현재의 중년 애인. 그들은 모두 그녀를 '길에서 주워' 잠깐 곁에 두지만 스토커처럼 남자에 목을 매고 기꺼이 노예가 되어 그들의 발바닥을 핥으며 상처와 모멸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매달리는 그녀에게 진저리를 치며 떠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헌신적인 자신을, 그들에게 아무런 짐도 되지 않고 기꺼이 쿨한 여인으로 다만 그들의 사랑의 일부분이라도 조금 나누어받으면 그걸로 족하면서 오로지 옆에 머물기만을 바란 자신이 왜 그들에게 냉소와 냉대를 받으며 버려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을 학대한(그녀를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던 그들은 그게 학대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부모에게서 제발 자신을 더는 간섭하거나 마음대로 자신의 삶을, 꿈을 조종하지 말고 놓아주길 간절히 바란 그녀가 그 어머니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 만들고 그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참 서글프다.
어떤 식으로든, 부모와 자식이든 연인이든 우정이든 혹은 부부이든간에 '중독'된 사랑은 결코 건강할 수가 없으며 그 관계를 갖는 이들을 상호간에 상처를 주고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 스토커에다 감금까지,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어 끝내 실형까지 살면서도 그 남자들과의 그런 관계를 끝내 청산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오늘 퇴근길에 동료랑 오면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든 노인들도 나름 절절한 사랑을 하지 않더냐, 네가 어디가 어떻다고 그 나이에 벌써다 죽은 것처럼 그리 살지 말고 어디 남자나 만나보라는 선배의 말에 나는 웃고 말았다.
사랑이 언제 달콤하기만 하더냐. 사실은 엄청난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 아니더냐. 달콤하고 비극적인 상상을 뒤죽박죽으로 늘어놓으며 밤새 뒤척여도 그게 마냥 좋은 스무살 어린 나이도 아니고 나는 이제 너무 피곤하고 싫다.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알수 없어 금방 다음 주쯤에 그 남자 아니면 죽겠다고 난리를 치며 주위사람들 혼을 빼놓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글쎄.. 흠...
조용한 수필같던 소설이 격정연애를 거쳐 허무한 스릴러처럼 진행되는 걸 보면서 내가 이런 흐름조차 기억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는 게 더 어이없다.
책꽂이의 소설을 죄다 새로 시작해도 반 정도는 아마 처음 읽는 것처럼 이렇게 웃길지 모르겠다.
에잇!
제목 : 연애중독
지은이 : 야마모토 후미오
옮긴이 : 양윤옥
펴낸 곳 : 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