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낡은 서고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소금눈물 2011. 11. 29. 12:08

 

05/21/2011 12:13 pm공개조회수 1 0

이 책은 제목 그대로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민감하고 아팠던 상흔을 기록한 작가들과 그 작품들, 그 작품들을 온 몸으로 겪어냈던 고장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나라의 문학도 역사를 외면하고 탄생하는 작품은 많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문학은 특히 현실의 응시와 역사인식에서 결코 멀리있지 않다. 작가의 본분 중에 자기가 속한 시대와 공동체의 현실과 정신에 대해서 고발하고 함께 고통을 겪는 선지자의 임무까지 부여한다면 의식과잉이라고 지탄받을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현실을 외면하고 마냥 한가한 꽃노래만 부르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신뢰가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신뢰라기 보다 그런 작가에 대해서 나는 아주 냉소적인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그런 점에서 작가의 사명의식을 아주 많이, 뜨겁게 요구하는 역사였고 작가들은 자신에게 부여받은 그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다. 때로 육체적, 정신적인 고초를 겪으며 이 땅의 운명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지 않았다.그 고난에 기꺼이 동참하여 작품에 아로새긴 작가들에게 머리숙여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작품이 씌여진 현장을 직접 찾아가 작가와 함께 하는 기행이 이 책이다. 그 많은 문학작품속에서 등장인물의 입과 행적을 통해 태어난 그 땅의 이야기들, 흘러온 시간속에서 때로 변하고 비틀리고 혹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곳도 많지만 이렇게 기억하고 찾아가는 발길이 더 고마운 것은 지금 현실이 이렇게 고단하고 괴로워서일까. 지금도 이 엄혹한 시간을 소설로, 시로 부르며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을 나는 기억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의 후배 시인인 김준태(1948~)에게는 광주라는 지명이 비슷한 감탄사로써 호명되어야 할 대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경우 '감탄사'라는 문법 용어는 얼마나 후안무치한 관습의 폭력일 것인가. 광주는 결코 감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의 맥락에서, 그리고 '그날 이후' 한국사의 흐름에서 광주는 감탄사이기에 앞서 눈물과 애도와 한숨과 분노와 결의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광주'의 앞에 붙는 '아아'는 감탄사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비명이자 주문(呪文)이다. 그것은 총창에 난자당한 도시를 대신해 내지르는 비명이며, 그것은 중음을 떠도는 원혼들을 부르는 주문이다. 그것은 한 저주받은 도시와 교신하기 위한 시인의 패스워드다.

p.263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더 좋았던 것은, 바로 윗 구절 같은 것이다.
'오월 광주'를 그려낸 가장 대표적인 시인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두고 한 표현이다.

김준태의 이 시는 오월광주의 영령들이 잠들어있는 묘역에 시비로 서 있다.

기행문의 형식을 빌린 산문이면서 바로 구절구절이 시문이지 않은가.
참말로 저 시를 이렇게 말고는 달리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
문자향이란 이런 거구나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문장이다.
멋을 부리려고 쓴 글이 아니라, 저 뜨거운 시의부름에 또한 그렇게 뜨겁게 응답하는 독자의떨림이다.

내리 며칠을 최재봉의 책과 함께 살았다.
즐거운 나날이었다.



제목 :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지은이 :최재봉
펴낸 곳 : 한겨레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