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tle
세손을 위해하려다 사가로 쫓겨난 화완옹주가 절치부심끝에 궁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
혜빈마마께 찾아갔군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아름다운 얼굴.
남편을 잃은 옹주의 복색이 빈의 복색보다 어쩌면 이리 화려한지요.
전하의 총애를 입고 안하무인으로 궁을 휘몰아다니던 기세가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마마께 올릴 하례물이라도 가져오신 건지?
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뻔히 아는데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띄운 옹주의 얼굴이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요.
일전에 마마께서 제 사가에 들러 울화를 다스리라 주고 가신 약재이옵니다.
헌데 저한테는 더는 필요가 없을 듯 싶어서요.
귀한 약재임이 분명할텐데 경솔히 내버릴 수도 없고.
생각해보니 마마께 더 쓰임이 있을 듯 하여 가져왔습니다.
요망한 것,
네가 지금 나를 업수히 여기는 구나.
이렇게 선세자저하도 농락하였겠지. 저 독버섯처럼 화려한 웃음으로.
두어 첩 맛을 보았는데 몸에 좋은 약이라서 그런지 과연 맛이 아주 쓰더군요.
그래, 어디 한번 마음껏 그 혀를 놀려보거라.
허나, 이제 제가 궐로 돌아왔으니 여기남은 쓴 약들은 모두 마마의 몫이 되어야 옳지 않겠습니까.
기고만장한 화완옹주의 독설에 혜빈, 웃으시는군요.
웃어?
네가 지금 웃어?
옹주의 뜻이 그렇다면 그 약은 내가 다시 받도록 하지요.
허나, 나한테는 그다지 쓰지 않을 것이니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이미 오래전 옹주의 덕에 쓸개보다 더 쓴 고통을 배운 납니다.
달라졌다!
이전의 혜빈이 아니다.
그 순하고 멍청하게 겁만 많던 그 여인이 아니다.
고작 이깟 약재 몇 첩에 얼굴을 찌푸리겠습니까.
그래, 쥐도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했지.
네가 세손을 위해 이제 네 앞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게구나.
이것은 옹주의 몫으로 앞으로도 넉넉히 남겨둘 것이니 언제든지 필요하시면 말씀을 하세요
아마 그리 오래진 않을 것입니다 옹주.
내 장담하지요.
언성 한번 높이지 않고 대차게 받아치는 혜빈에 옹주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남편을 무참하게 잃고도 큰소리로 항변도 못하고 숨고 피하기만 하기에 미련하고 어리석다만 생각하였더니, 혜빈의 가슴 속에 서리서리 쌓인 한이 이렇게 무섭고 독한 것이었던가 그 한이 저 여인을 이렇게 변하게 하였나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그래, 이제 적수를 내가 만났구나.
너무 만만한 상대는 싸워 이기는 재미가 없지.
그래, 그 약사발을 누가 들이킬지 두고보자.
이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살려달라, 목숨만 부지하게 해달라 애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너희가 내 그 분을 그리 보냈지만 내 아들마저 그리할 수는 없을 게다.
내가 그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오냐.
내겐 이보다 더 쓰고 독한 약재가 얼마든지 있다.
이 약이 부족하다 하면 내 골수를 다 빼어서라도 너희에게 부어버릴 것이다.
혜빈전 방 안에는 그 모질고 독한 세월 내내, 서리고 고인 냉기가 무섭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