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소금눈물의 그림편지
농가의 만추 - 변관식
소금눈물
2011. 11. 3. 16:33
청전(이상범)의 그림을 보면 늘 텅빈 모추(暮秋)의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이 그대로 가슴으로 불어들고
소정(변관식)의 그림은 또 같은 늦가을 이라 하여도 겨울을 준비하는 강건한 힘줄처럼 느껴지는 걸까.
같은 시기를 살고 두 사람 다 당대의 화가들로 불리워졌으나 그 평가는 참으로 분분하다.
한 쪽은 시대와 친분이 두터웠고 그만큼 명성도 더 높았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형상미 속에 우리 산천의 그 가뭇없는 아름다움의 여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 쪽은 그야말로 그런 시대와 불화했고 굽히지 않는 결기로 다치기도 한다.
소정의 그림은 힘있고 남성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마저도 뼈가 있는 듯이 느껴지게 한다.
금강산을 그리는데 소정 만한 이가 드물고 그의 장기도 금강도로 드러난다 하나
나는 천성적으로 그렇게 장대하고 화려한 대작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고 나지막한 언덕, 마당 가득 들여놓은 짚가리와 잎이 모두 떨어진 나목, 그 사이를 힘차게 걸어가는 두루마기...
왼 쪽의 큰 나무줄기에 비해 집은 언덕아 래로 묻힐 듯이 작은데 그 틈새로 보이는 왼쪽 개울과 마당의 여백이 꽉 찬 배경에서 숨을 고르게 한다.
언제나 비스듬히 허리를 숙이고 바쁘게 걸어가는 소정의 사람들. 저절로 미소를 띄게 만든다.
아. 쓸쓸한 가을이 아니다.
단단히 몸을 여미고 긴 겨울로 걸어들어가는 당차고 씩씩한 늦가을이다.
거칠게 쓱쓱 지나간 것 같은 힘있는 붓자국 아래,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들도 저렇게 세월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단단히 몸을 여미자.